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인의 감사 (합 3:16-18)

첨부 1


의인의 감사 (합 3:16-18)


삶의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1)불평 불만형 - 항상 원망 불평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불평 불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목석형 - 좋다 나쁘다에 대한 반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도 감사의 표현을 잘 할줄 모릅니다. 세상을 달관한 도인처럼 무미 건조한 사람들입니다.
3)감사형 - 늘 감사하는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은 감사하는 사람의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감사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 - 2장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욕구불만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의가 땅에 떨어지고 율법이 해이해지며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고 있는 망국적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심을 인해 불평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바벨론 군대를 일으켜 유다를 징벌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계획과 말세적 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다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자세가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욕구불만형에서 감사형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의 변화된 모습이 16-19절에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1)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침범한 바벨론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하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극복할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강한 군대가 짓밟고 약탈해 가서 완전히 빈털터리 상황이 되었다 할지라도 즐거워 하며 기뻐하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행복은 환경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비참한 환경 속에 처한 사람도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1,2장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의 입술에서 불평과 원망이 떠나 갔습니다. 짜증스럽고 원망스러운 상황에서 그를 건져내어 사슴같게 하시고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르면 불평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를 신뢰하면 그의 삶은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찬양 시 속에서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진정한 감사란 환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시기하는 대신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왕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금령을 만들고 왕의 인가를 받아 전국에 선포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의 대적들이 나를 해치려고 합니다. 설령 제가 사자굴에 던지워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쉴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그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환난과 핍박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뒤로 물러서지 아니하고 환난을 당할지라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너무나 먼 다리], [가장 길었던 날]등의 저자 코넬리우스 라이언. 그는 5년 동안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후에 그의 투병기를 그의 부인이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이 [가장 긴 밤]이라는 책입니다. 그의 부인은 남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똑같은 기도를 소리내어 반복하였다. ‘하나님 또 하루 좋은 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느날 나는 남편에게 무엇이 그토록 좋은 날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자기가 암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은 날이 멀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남편은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것처럼 새 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다섯 가지로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하루가 좋은 이유는 ‘첫째 아내를 또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마지막 작품 [가장 길었던 날]을 탈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넷째 병과 싸울 의지와 힘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며, 다섯째 주님이 언제나 저기에 바로 앞 가까이에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상황에서도 절망치 않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16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에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의 공포는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 수 없습니다. 청년시절 함께 하숙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월남전에서 트럭으로 이동하다가 베트콩의 기습사격을 받고 10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 때의 공포로 인해 계속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던 날의 공포는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환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담대함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2.궁핍한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17-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조지 뮐러목사님에게 어느날 300여명의 고아들에게 먹일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고아원의 직원들이 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식탁에 앉혔습니다. 직원들은 어리둥절해서 목사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빈 접시를 어린아이들 앞에 다 놓게 하고 목사님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빵을 실은 마차가 고아원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 목사님 생애 중 고아들을 굶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저는 조지 뮬러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받은 감동이 얼마나 진했던지 생각할 때마다 그 은혜가 새롭습니다. 

영국의 한 해군병사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집도, 재산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폐허만 남아 있었습니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원망 불평을 터뜨리다가 그만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전신마비가 온 것은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사는 이 환자를 치료하는 약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하루에 세 번씩 꼭 감사기도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가 분을 다스리며 의사의 처방대로 하루에 세 번씩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어느날 중학교에 다니던 딸이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주려고 빵을 사왔습니다. 아버지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 빵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려는 순간 그의 전신마비 증세가 거짓말처럼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가진 것이 많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사라지고 정말 빈털터리가 되다시피 할 때 감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극한 궁핍과 고통 속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눈물 섞인 빵을 씹으면서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감사하십시요. 하나님께서 굶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3.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재물을 잃으면 시험에 빠집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재물 잃은 것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믿음까지 잃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에 병을 얻게 되고 가정도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만은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의 목적과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잃는 것은 부분을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지만 믿음을 잃는 것은 천국을 잃는 것입니다.” 돈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물질적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 잃더라도 하나님만은 잃어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18-19절 말씀을 보십시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만이 기쁨의 근원이요 힘의 근원인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고 불평 원망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십니다. 

사12:2-4,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우너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내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감사의 조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감사의 조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완악한 마음을 녹이시고 내 마음에 들어와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감사의 조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면 기쁨도 감사도 없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최고의 가치로 알고 그 분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웃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환경을 이기는 승리를 부여하십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환경 위에 있게 됩니다. 늘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어느 창고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한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왜 텅텅 비어있느냐고 물으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성도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한 응답으로 하늘의 보화를 다 내어 주어서 텅 비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창고는 아직도 하늘의 보화가 가득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천사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보화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것인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렇게 가득 쌓여 있소.” 그렇습니다. 요구는 많아도 감사는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전보다 소유한 것은 많은데 감사는 점점 약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돈이 없어서 감사 못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신자라도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불평족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환난 중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극심한 궁핍 가운데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요 의인의 감사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