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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교회 성년 23년의 감사 (왕하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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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년 23년의 감사 (왕하 12:1-16)

옛말에 타산지석他山之石(다른 산에 나는 거친 돌도 자신의 옥을 가는데 도움이 된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1960년대 중국문화 혁명 때 제창된 반면교사反面敎師(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본문 성경에 나타난 요아스(여호와는 강하시다) 왕의 처음은 그의 이름과 같은 치세를 했습니다. 그는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입니다. 
그의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로 브엘세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칠 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40년 동안 치리했습니다. 

그 아버지 아하시야 왕이 세상을 떠날 때에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의 혈통을 모두 학살하고 자기 아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국난 속에서 아하시야의 어린 왕자 요아스는 그의 고모가 되는 여호사브앗의 기지로 죽음을 면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손입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속에 6년 동안 은밀히 양육되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7세가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와 여러 족장과 레위 사람들이 동맹하여 아달랴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요아스를 즉위시키는 거사를 단행했습니다. 
결국 아달랴는 왕궁 미문 어귀에서 살해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족이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바알의 단과 우상들을 훼파하고 거기에 속한 제사장까지 제거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종교를 개혁하고 23년 만에 성전수리를 당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기명까지 구비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요아스 왕의 통치가 절정에 이를 때 요아스를 지도하던 여호야다가 죽었습니다. 요아스는 믿음 없는 방백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게 되고 이를 꾸짖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살해했습니다(대하 24:20-22).

아람왕 하사엘이 침략하자 성전기물을 조공으로 드리는 국가적인 수치를 드러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요아스는 자신의 신복 요사갈과 여호사바드에게 살해되었습니다(왕하 12:21).
요아스의 시체는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왕하 21:1-21). 
유다 왕 요아스의 생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교회 성년 23년의 감사"라는 제하로 설교하기 원합니다. 

Ⅰ. 우리교회가 고려파의 신앙전통을 계승한 데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12장 1절에 『 …그 모친의 이름은 라 사람이더라 』고 했습니다.
요아스의 모친은 유서 깊은 브엘세바 출신입니다. "브엘세바"라는 말은 "맹세의 우물"이란 뜻입니다. 
이 성읍 이름은 아브라함이 그랄지방의 통치자인 아비멜렉과 화해언약을 맺고 그 지역의 물 사용권을 얻은데서 생겨났습니다(창 21:25-32).

아브라함은 이곳에 한 그루의 에셀 나무를 심고 약속의 아들 이삭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며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창 21:33).

이삭은 그랄 골짜기(창 26:17)를 거쳐서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이삭은 여기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습니다(창 26:23-33). 이곳은 야곱과 에서가 말다툼을 한 곳입니다(창 28:10). 

가나안 정복 후에 이곳은 시므온 지파에게 분할되었습니다(수 19:2; 대상 4:28). 이곳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 집무했던 곳입니다(삼상 8:2). 이곳은 왕국의 남쪽 지방의 행정중심도시이기도 합니다(대상 21:2; 삼하 24:7; 왕상 4:25; 대하 19:4).

유다 왕 요아스의 모친이 브엘세바 출신이었다는 것은 "시비아"(아프리카 영양羚羊)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시비아라는 이름은 브엘세바 출신들에게 주로 붙여졌습니다.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라고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절에 『 해를 입은 한 여자 』가 나옵니다. 이 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예수를 수태하고 예수를 해산하는 수고가 있습니다. 
신약 교회를 신부 곧 여자에 비유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해산의 아픔을 부르짖는 것은 희생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나오고 자기희생을 통하여 영광의 결실이 오는 것은 진리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참된 그리스도 교회는 내일의 승리를 위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계시록 12장 13절에 『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고 했습니다. 
여기 『 남자를 낳은 여자 』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해산하는 교회입니다. 

남자를 낳지 않은 여자는 핍박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진리를 수태하고 해산하지 않는 교회는 핍박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해산하지 않는 교회는 이름만 교회이지 사실상 사탄의 회會요 영안실靈安室 교회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는 아들을 생산하기 위한 수고입니다. 요아스는 신앙의 유서 깊은 브엘세바 출신의 어머니 시비아를 두었습니다.

갈보리교회는 고려파의 신앙전통과 신학의 정통성을 견지하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행 20:28). 우리교회는 순교자의 고장입니다. 


Ⅱ. 우리교회에 좋은 신앙의 지도자를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12장 2절에 『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라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당대의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에 따라 유다를 치리했습니다. 여호야다(여호와께서 알고 계시다)는 남조 유다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북조 아합왕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한 시대에 사역했습니다. 그는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재위 중에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왕의 계보가 끊어질 위기에서 다윗 왕가의 혈통을 지켜준 제사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계보를 지켰다는데 그 의미가 큽니다. 

아달랴가 6년 동안 통치하면서 다윗의 혈통을 단절시키려고 무수히 남자를 죽였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여호야다와 그 아내 여호사브앗은 왕자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6년 동안 기르는데 성공했습니다(왕하 11:2-3; 대하 22:11-12). 
왕자 요아스가 7세가 되는 해 여호야다는 중신들과 군인들의 협조아래 국권과 왕권을 회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여호야다는 아달랴가 자신의 장모였지만 거기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우상을 타파하고 다윗 왕가의 혈통을 계승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과 정치개혁을 성공시킨 당대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가 130세에 죽자 그 공로가 인정되어 왕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되어 8 15해방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출옥 성도들에 의해 태동된 고려파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옥중 성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고려신학교의 신앙의 물줄기를 따라 세워졌습니다. 고려파에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들을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의 거룩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섭리하시고 신앙의 순결성을 보존토록 하셨습니다.

옛 고려파가 고신 교단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에 형제간에 불신 법정의 송사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려파의 실패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고려파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해 반고소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 교단이 바로 우리 교단입니다. 순결성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순결성을 잃으면 죄악입니다.

우리는 고려파의 신앙전통을 주저하지 않고 아벨에서부터 찾습니다. 계속해서 셋,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계속해서 선지와 사도들로 이어져서 신약시대를 마감했습니다. 
초대교회 300년의 기나긴 박해 속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교부들과 타락한 중세 로마 카톨릭과 싸워 신앙의 순결을 지켜온 종교개혁자들의 전통 계승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교회는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칼빈, 메첸,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석원태로 이어지는 거룩한 신앙의 물줄기를 타고 흐르기를 원합니다. 
이들과 함께 갈보리의 신앙전통계승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Ⅲ. 성전수리(리모델링, 인테리어)에 대한 감사 입니다. 

본문 12장 6절에 『 요아스 왕 이십 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아달랴의 통치로 인해 훼손된 예루살렘 성전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성전 수리작업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1차는 실패했습니다(왕하 12:4-6). 제2차 수축修築은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왕의 지휘하에 이루어졌습니다(왕하 12:9-16).
요아스 왕 23년은 이스라엘 왕조가 바뀌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왕하 13:1). 요아스 왕이 성전수리 명령을 내린지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그동안 성전수리에 대한 관심과 사명감이 결여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요아스 왕은 자신의 책임을 직감하고 왕의 계획대로 성전수리를 전격적으로 착수했습니다. 

우리교회가 23년을 지내는 동안 수축해야 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수리를 단순히 교회의 외형적인 건물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갈보리교회를 리모델링(remodeling) 해야 될 부분이 많았지만 전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한 데는 말로 다하지 못 할 여러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건물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기轉機(전환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먼저 영적 부흥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당회부터 각 기관의 복고의 기회가 왔습니다. 선교, 교육, 봉사, 섬김, 하나님 교회로써의 기능과 역할의 때가 온 것입니다. 
개혁주의(Reformed)는 바로 무너진 곳을 수축하는 리모델링(remodeling) 작업입니다. 


Ⅳ. 반면교사反面敎師에 대한 감사입니다.

열왕기하 12장 20-21절에 『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신복에게 살해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주중적국舟中敵國(군주가 덕을 닦지 못하면 자기 편일 지라도 모두 곧 적이 될 수 있음)이란 말이 요아스에게 해당됩니다. 

또 작적금우昨敵今友(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됨)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아스는 역사의 성패를 읽는 혜안이 없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생존시에는 성군이 되었다가 그가 죽은 후에는 바알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잠언 12장 6절에 『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짐언 13장 15절에 『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배은망덕한 일을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말을 하는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일입니다.

역대하 24장 20-22절에 『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고 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갈보리교회는 고려파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객관적 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권주의자들의 헤게모니 쟁탈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딤전 6:5). 교회가 경건하려면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딤전 6: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서인 시켰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다시 복위 조서詔書(임금의 뜻을 일반에게 알리고자 적은 문서)를 내렸습니다. 
그 교지 첫 머리에 숙종은 과인이 만나지 말아야 될 사람과 만난 것을 후회하고 과인이 말해서는 안될 사람에게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처음보다 나중이 나빴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욥기 8장 7절에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당대의 제사장 여호야다를 잘 만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 난 후에는 사람을 잘못 만났습니다. 
갈보리교회 성년 23년의 감사는 역사 속에 경험적 교회들의 감사와는 사뭇 다른 감사입니다. 

먼저 죽음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교회의 뿌리에 대한 감사입니다. 좋은 지도자들에게 양육 받게 된 감사입니다. 성전수리(리모델링)에 대한 감사입니다. 타산지석에 대한 감사입니다. 

뿌리는 훼손시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년이 된 갈보리교회는 받기만 하지 말고 이제부터 우리도 더 나은 지도자가 되어서 또 다른 사람들을 양육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리모델링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영적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장차 우리교회는 고려신학교 출신으로 이어져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흐르는 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갈보리교회는 하늘나라 영광나라를 보는 곳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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