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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먼저 구할 것 (마 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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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구할 것 (마 6:25-33)


또 다시 추수 감사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도시 교회들로서는 추수 감사라는 것이 별로 실감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솔직히 말해서 추수 감사 주일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절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 교회의 전통을 우리가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한 해에 한 번이라도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는 아주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마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성경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고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디모데후서 3장 2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또 로마서 1장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까? 저는 삶의 우선 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급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 시대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도 무조건 큰 교회를 지향하며 교세 늘리기에 몰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언제부턴가 많은 교회들이 삼박자 축복과 같은 구호를 앞세우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기복 신앙입니다. 복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 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적이고 또 세속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돈만 많이 번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관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바로 앞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재물도 또한 주인으로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있게 아니라고 대답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도 놓치고 싶지 않고 또 재물도 놓치기 싫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런 생각은 그릇된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용된 염려한다는 말은 원래 나누어진다, 찢어진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염려는 다만 마음을 상하게 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길 것 같으면 결국 삶의 참 기쁨을 잃어버릴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염려하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은 만일 그런 나쁜 습관을 갖고 있으면 이제 그런 습관을 깨뜨리고 염려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자연 현상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새들이 게으르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새들이 결코 게으르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 조건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주님은 쓸데없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결코 우리의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는 지극히 무능력한 존재라는 사실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키로 번역된 말은 생명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염려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심으로써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염려라는 것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의 잘못된 감정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주님은 거듭 밝히셨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풀을 말려서 땔감, 즉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불쏘시개에 불과한 풀도 아름답게 가꾸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을 좋은 것으로 입히지 아니하시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입을 것을 염려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해서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반대말은 근심과 걱정이요 염려의 반대말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고 세상의 염려를 버리지 못할 때에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믿음이 작은 자라고 꾸짖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앞에서 말씀하신 것들을 다시 한 번 요약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을 살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재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재물 때문에 결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이란 혈통적인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들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 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대답을 주님은 분명히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 같으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이고 반면에 이 세상 나라는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이란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임자 없는 강아지 두 마리, 뿔뚝이와 까미를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매일 새벽 저를 가장 먼저 환영하는 것이 바로 뿔뚝이와 까미입니다. 그런데 뿔뚝이와 까미가 저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매일 밤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젊은 아줌마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아줌마는 유기견들을 돌보기 위해서 아기도 갖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참 착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매일 아침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공장 사장의 동생입니다. 

아마 그 다음이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그 강아지들을 좋아하지만 결코 그 강아지들이 우리의 삶의 최우선 순위는 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 강아지들도 그 점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저와 가깝게 지내지만 그 강아지들은 저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않습니다. 항상 약간의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임자가 있는 강아지와 임자가 없는 강아지의 차이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도 무척 고달픈 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때문에 고생한 분들도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특히 고생한 분들도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지쳐서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갖게 된 영생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지 못한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다스리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더하시는 그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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