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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달빛이 침을 뱉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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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 (동화작가)

우리 집 뒷산에 쥐똥나무숲이 있다. 쥐똥나무숲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커다란 덫이 고양이 앞 발을 꽉 물고 있었다. 동네 사람이 고양이 씨를 말리겠다고 놓은 덫이었다. 고양이 울음 소리를 들으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투덜대는 사람이었다. 덫에 걸린 고양이 앞발이 찢어진 종이처럼 너덜거렸다. 아픈 덫을 끌고 쥐똥나무 숲까지 어찌 걸어 왔을까. 고양이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새끼 두 마리를 등 뒤에 거느리고 동네 어귀를 아기똥아기똥 걸어다니던 얼룩 무늬 고양이었다. 가까운 곳에 새끼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살펴도 새끼들은 없었다.

덫을 빼주려고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겁먹은 고양이는 야옹야옹 울어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걸음이 가까워질 때마다 고양이는 절망을 소리쳤다. 바로 그 때, 등 뒤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멀찌감치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입에 먹이를 물고 오다가 나를 보고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먹이를 땅에 내려놓고 새끼 고양이들은 '이야오옹 이야오옹' 근심스런 눈빛으로 제 어미를 불렀다. 새끼들을 지키려고 어미 고양이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어미 고양이의 부러진 앞 다리가 힘없이 덜렁거렸다.

나는 냉큼 쥐똥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멀찍이 서서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이 어미 품속으로 달려갔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이 물고 온 먹이를 먹지 않았다. 마음 어둑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밤 늦도록 어미 고양이가 마음에 걸렸다. 고양이를 깨물고 있는 덫을 풀어주고 싶었다. 절망을 풀어주고 싶었다. 고양이 발톱에 할퀴우지 않으려고 소매 두툼한 옷을 꺼내 입었다. 가죽장갑까지 끼고 밤 10시가 넘어 쥐똥나무 숲으로 다시 갔다.

달빛이 환했다. 쥐똥나무 숲속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어둠 사이로 어미 고양이 눈빛이 푸르렀다. 고양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 품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야옹야옹야옹야옹'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 들으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를 향해 조심조심 팔을 뻗었다. 어미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 홉뜨고 나를 노려보지도 않았다. 어미 고양이는 죽어 있었다. 새끼들 지키려고 눈도 감지 못하고 달빛 아래 싸늘히 잠들어 있었다. 고양이 울음 소리는 새끼들 울음소리였다. 새끼들 울음 소리가 쥐똥나무 숲을 흔들었다. 숲속을 날아오른 까마귀떼가 밤하늘 별들을 그악스럽게 쪼아댔다. 별은 별이 되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등불 켜진 집들 위로 달빛이 침을 뱉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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