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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팔로십(followship·추종)을 배우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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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너드 스위트

나의 저서 중 ‘Summoned to Lead’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서는 ‘귀없는 리더, 귀있는 리더’ 번역됐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나는 책 제목을 잘못 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Summoned to Follow’가 됐어야 했다. 물론 당시의 집필의도는 리더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거나 훈련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제자’의 본래 의미는 ‘배우는 사람’ 또는 ‘따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뒤에서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 즉, 우리의 참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뒤에 서서 겸손히 맡겨진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뒤편에서 그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 콘퍼런스’ 대신 ‘팔로우십 콘퍼런스’에 참석해 보았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팔로우십’보다 ‘리더쉽’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앞지르는 것이 결코 제자의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서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앞지르는 기독교가 되려고 해왔다. 예수님보다 앞서려는 교회, 성경말씀보다 앞서려는 신학, 이웃(공동체)보다 앞서려는 자신(개인), 자연보다 앞서려는 과학기술 등이다. 그 결과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선되지 않은 어떠한 노력도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위험할 따름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낸 것은 모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홍해를 가른 것도 모세가 아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나타내신 것 역시 모세가 아니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랐을 뿐이었다. 성경말씀에서 보듯이 모세의 팔로우십은 정치적 타협이나 전략이 아니었다. 수많은 백성들을 통솔한 것도 인간관리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을 통해 나온 믿음이었다. 40년의 여정 뒤 팔로우십의 자세를 잠시 망각하고 리더쉽 권위를 드러냈을 때 모세의 종말은 실로 두려운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보는 것이 듣는 것을 앞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음성(소리)이 빛을 만들었던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람은 비전을 보지 않고 비전을 들어야 한다. 교회는 이끄는 자로서의 리더쉽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따르는 자로서의 팔로우십을 배워야 할 것이다. 팔로우십을 배우는 교회여,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 20:26).”

번역·정리 = 김영래 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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