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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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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이란 흑인가수는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로부터 '100년에 한 명 나온다'는 극찬을 받았던 
흑인 역사상 최고 알토 가수였다고 합니다. 

그 마리안 앤더슨이 불러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흑인영가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자주 부르는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라고 합니다. 

이 찬송은 세계적인 가수가 불렀기 때문에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그 가사가 노래를 불렀던 마리안 앤더슨의 생애를 그대로 고백한 것이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가난한 흑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때에 이미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고, 
6살 되었을 때에는 교회 찬양대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음악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가난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재능을 인정한 교회 성도들이 
돈을 모아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후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단 한 번도 음악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28세 때 있었던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자 공개 모집이었는데, 
여기서 그녀가 300여 명의 지원자 가운데서 최후의 한 명으로 뽑히면서 였습니다. 

그러나 유명해진 그녀였지만, 그때부터 그녀의 행로는 결코 승승장구가 아니었습니다. 
인종 차별과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호텔이나 식당, 공연장 등에서는 여전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공연을 하기로 예약되어 있던 공연장에서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취소 통보를 받아야 했고, 
호텔에 투숙하려다가 거부당하는 일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식당에서조차 출입을 금지 당해 식사를 하지 못한 채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처절한 인종 학대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처와 영국 여왕을 위한 독창회를 가질 정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독창회가 끝났을 때 기자들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였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와 영국 여왕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독창회를 가졌던 오늘'이라고 대답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남의 집 빨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던 그 날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참했던 가난과 가혹했던 인종차별의 아픔을 겪었던 그녀였기에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라고 
찬송을 뜨거운 가슴으로 부를 수 있었고 
그러한 찬양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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