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가진 것 모두 나누고 간 기부천사

첨부 1


이창식 씨(55) 는 기부천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주택가의 한 평 남짓한 구둣방에서 20여 년간 구두를 닦으며 동전을 모아 기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아흔이 넘는 노모와 대학입학을 앞둔 딸을 부양하며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활발한 기부를 펼칠 만큼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한 때 이 씨는 이혼하면서 술에 빠져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체 장애인이 리어카를 끌고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술병을 치우고 2000년 구두 수선점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그는 “어려울 때 남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해 내고는 2001년 2월부터 ‘수입의 1%를 이웃과 나누자’는 ‘1% 나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46㎡(14평)의 눅눅하고 습기가 찬 반지하 전셋집에 노모와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었지만 그는 매달 1만여 원씩 수입의 1%를 11년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씨는 2006년부터 5년 여간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에 매달 1만 여원을 기부해왔습니다. 또 매월 5000~1만원씩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기부했습니다. 2010년 4월부터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에도 매달 1만원씩 기부했습니다.

이 씨는 겨울철에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 배달 봉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2007년 3월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사후 각막 기증과 뇌사 시 장기 기증 서약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지난 20일 새벽잠에서 깨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씨가 일해 왔던 서울 성수동 구두 수선집 앞에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국화 한 다발이 페트병에 꽂힌 채 외롭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한 다발의 국화는 수백 송이 국화로 장식된 조화(弔花)보다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딸 은혜 씨는 “아빠처럼 매달 하지는 못해도 앞으로도 계속 기부를 해 좋은 뜻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 정충영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