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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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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배경과 비슷한 내용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온답니다. 대학시절, 이 부분을 보면서...정말 큰 감동을 받았었어요. 그때의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네요~

*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중에서 * -------------------------------

"저것 봐! 저 구석."

어머니가 그 곳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구석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는 남자와 그 옆에 눈을 크게 뜨고서 새로 온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년. 그녀가 보고 있자니까 소년은 천천히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와 목쉰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닌 여기 주인이세요?"
"아니."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비를 피하러 들어왔을 뿐이야, 딸애가 병이 나서. 얘야, 젖지 않은 담요 없니? 이 애 옷을 벗기는 데 쓸 수 있을 만한?"

소년은 구석으로 되돌아가더니 더러운 깃털 이불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

"고맙다. 이 양반은 웬일이냐?"

소년은 목이 쉰 단조로운 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병이 났는데―이젠 먹질 못해서 저래요."

"뭐라구?"

"굶어 죽을 것 같애요. 목화밭에서 병이 났어요. 엿새나 먹질 못했거든요."

어머니는 구석으로 걸어가서 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오십 세 가량의 사나이, 턱수염이 난 얼굴은 홀쭉 야위었고 뜬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이 어머니 옆에 따라와 섰다.

"네 아버지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방금 먹었다느니, 그런 소릴 하며 내게만 먹을 걸 사 주시더니, 이젠 기운이 다 빠져서 움직이시지도 못해요."

지붕을 때리던 빗발이 좀 약해졌는지,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도 이제는 조용히 달래는 듯한 소리로 변했다. 핼쑥 야윈 사나이가 입술을 움직였다. 어머니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입술을 움직인다.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넌 이젠 안심하고 있어. 아버진 이젠 나으신다. 우리 딸의 젖은 옷을 벗길 때까지 좀 기다려다오. 응?"

어머니는 딸 있는 데로 돌아와서,

"자, 그 옷을 벗어라."

하고는 깃털 이불을 펴서 딸의 몸이 보이지 않게 가리었다. 그리고 딸이 옷을 다 벗자, 어머니는 그 깃털 이불로 몸을 싸 주었다.

소년이 또다시 옆으로 다가와서는 사정하듯 말했다.

"난 몰랐어요. 벌써 먹었다느니, 배가 고프지 않다느니, 아버지가 그런 소리만 했거든요. 어젯밤 내가 나가서 유리창을 깨고 식빵을 좀 훔쳐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모두 토해 버리구, 그 후부터는 전보다도 기운이 더 빠지셨어요. 수프나 우유를 드려야겠는데, 아주머니, 우유 살 돈 좀 있으세요?"

"가만 있거라. 걱정 안 해도 좋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갑자기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버진 정말 죽어요! 정말 굶어 죽어요!"

"조용하거라."

어머니는 죽어 가는 사나이를 막연히 지켜 보고 있는 아버지와 존 백부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 깃털 이불로 몸을 싸고 움츠리고 앉아 있는 '샤론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은 '샤론의 장미'의 눈을 지나쳐 앞을 보고 있다가 다시 딸의 눈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두 여인은 서로 상대방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통하는 바가 있다는 듯이. 딸의 숨결이 가쁘게 헐떡거렸다.

"좋아요."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줄줄 알았다. 이미 알고 있었어!"

어머니는 무릎 위에 깍지 낀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샤론의 장미'가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들―좀―밖에 나가 줘요."

빗발이 가볍게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숙여 손바닥으로 딸의 이마에 흩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고는 그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재빨리 일어섰다.

"자, 모두 저 헛간으로 나가요."

루디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쉬!"

하고 어머니가 말을 막았다.

"잠자코 나가 있어."

어머니는 그들을 모두 문 밖으로 몰아낸 뒤, 자기도 소년을 끌고 나가 삐거덕거리는 문짝을 닫았다.

잠시 '샤론의 장미'는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가 나는 헛간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 몸에 걸친 깃털 이불을 끌어당기며 천천히 구석으로 걸어가 사나이의 그 야윈 얼굴과 겁에 질려 말똥거리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그 다음 그녀는 천천히 남자 옆에 몸을 눕혔다. 사나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샤론의 장미'는 깃털 이불 한쪽을 헤치고 젖을 꺼냈다.

"먹어야 해요."

그녀는 몸을 비틀 듯 더 가까이 다가가 사나이의 머리 뒤로 팔을 넣고 머리를 받쳐 주었다. 손가락은 부드럽게 사나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쳐들어 헛간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모으고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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