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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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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포스터(국제 레노바레 대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생명은 역동적이고 힘차게 고동치는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이었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이 '참된 생명'(딤전6:19)을 당신과 나에게 주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롬 8:1∼2)고 말씀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아주 특별한 용어를 사용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골 3:3) 생명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조에(zoe)'라는 헬라어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에 근원을 둔,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성경은 두 종류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비오스(bios), 즉 창조된 물질적 생명이고, 또 하나는 조에, 즉 영원한 영적 생명이다. 죽음에도 두 종류가 있다. 육체적 죽음인 텔류테(teleute)와 영적 죽음인 타나토스(thanatos)가 그것이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살아있지만(비오스), 영적으로 죽어있는(타나토스) 경우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조에)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선포하셨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이 새 생명이 육체의 죽음으로 파괴될 수 없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 생명, 조에는 언제까지나 존속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께서 주신 것이 바로 이 조에,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향유하는 생명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자기 안에서 그의 생명, 조에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신자 안에 계시며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후 1:21). 이 생명은 소비자나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들만이 누린다.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이 생명을 이용해 내 필요와 목적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비자적 태도이다. 그런 식으로는 이 생명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 근원을 둔 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 안으로 들어갈 때, 그 생명은 더 이상 내 생명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난 그 생명에 참여할 특권을 누릴 뿐이다. 이 생명은 우리를 집어삼키며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까지 이끌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생명을 계속 찾으며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타락으로부터 유래한 사망의 원리도 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안겨주는 행위와 태도는 무엇이며, 사망을 몰고오는 행위와 태도는 무엇인지 항상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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