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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고향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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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3일 간의 일정을 보내고 막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매번 명절마다 다녀오는 고향 길은 멀고 힘든 길이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정든 고향산천을 대할 수 있어 저에게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누구는 명절에 찾아갈 고향이 있어 행복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에게는 우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어려서 타향살이를 시작한 이에겐 고향은 늘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하던 친지들을 만났습니다. 안동에서 큰 고개를 몇 개 넘으면 깊은 산중에 큰 이모네 식구가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일찍이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93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지금은 비록 농촌인구의 급감으로 교회의 명맥만 유지해 가고 있지만 교회를 통해 보급된 사과나무는 밭농사에만 의존하던 산골마을의 낙후된 경제상황을 진흥 시켰으며 또한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오랜 세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회 설립 멤버인 선친에 이어 2대째 장로로서 교회를 지키고 있는 이모부님은 얼마 전 장로직에서 조기 은퇴한 후 원로장로에 추대되셨는데 그 이면에 감추인 사연을 전해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농촌교회는 이농현상 때문에 교세가 계속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여 장로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교인수가 교회법의 기준치 이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교회는 더 이상의 장로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 교회에도 십 수년째 안수집사로 교회를 잘 섬기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을 장로로 세우기 위하여 이모부님은 조기 은퇴의 용단을 내린 것입니다. 언제 장로가 될지도 모를 형편임에도 교회를 충성되이 섬기신 그 집사님의 순전한 믿음과 후진을 위하여 아름답게 물러나신 이모부님의 깊은 신앙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제가 방문한 그날도 새벽기도회에 나서는데 누군가 두부와 묵과 콩나물을 조금씩 담은 비닐 봉지를 문밖에 몰래 두고 갔다며 말씀하시는 이모님의 눈가에 맺힌 잔잔한 눈물을 보며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주에서 장로로 교회를 섬기시는 외삼촌은 늘 정정하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십니다. 외삼촌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곧 어머니 마저 떠난 후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첫 손자를 지금껏 길러왔습니다. 이제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교사의 꿈을 안고 교대에 입학한 손자를 바라보며 마냥 기뻐하시는 외삼촌 부부의 희생적인 삶을 통하여 끝없는 내리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홀로 어렵게 삼형제를 키우며 농촌교회 전도사로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시던 막내 이모님은 드디어 작년에 목사안수를 받으셨습니다. 목사님이 된 이모님을 이번에 처음 뵙게 되었는데 순간 왜 그렇게 목이 메이든지요. 그 동안 이모님은 농촌교회 전도사로 봉사하시며 생활하시기가 너무 어려워 양봉을 하셨는데 이제는 목사가 되고 보니 양봉일이 목회에 방해가 된다며 그만 두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목사가 되었다고는 하나 농촌교회의 형편은 변함이 없을텐데 노동하는 목사도 괜찮을 거라며 제가 열심히 팔아 드릴 테니 계속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한평생 믿음의 삶을 엮어가는 여러 친지들을 바라보며 오늘 나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성안교회 시온성가대 회보 3월호 지휘자 칼럼 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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