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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엄마 때문에 웃고 산다고?(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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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우울해."
느닷없이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니 왜?"
"몰라. 그러니 나 말 시키지 말아."
차암 별일이네.
"알았어. 말 안 시킬께."
그렇게 말은 해 놓았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맹랑하다 싶더라구요.
(요 녀석이...)
살그머니 딸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눈치를 보며 딸아이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 있니?"
"아니야."
"친구랑 싸웠니?"
"아니라니까."
"그럼 운동이 힘드니?"
"엄마! 말 시키지 말래니깐!"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왜 그리도 빨리 오는지요. 금방 까르르 하고 넘어가다가도, 금방 또 샐쭉해집니다. 우리 때는 빨라야 중학교 그것도 아주 드물었고, 대다수가 고등학교에나 가야 사춘기라는 말이 필요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무엇이든 빠른가 봅니다. 아이에게 무안을 당하고는 슬그머니 아이의 방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제 방에서 나온 딸아이는 또 내게 말합니다.
"엄마! 나 외로워."
(이건 또 뭔 소린가?")
가슴이 철렁 했지만 별로 놀란 기색 없이 아이에게 묻습니다.
"왜 외로운데?"
"나도 모르겠어."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응."
"있다가 아빠도 들어오시는데?"
"그래도."
"참 이상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강아지들도 모두 있는데 왜 외로울까?"
"나도 몰라."
"엄마가 어떻게 해주어야 안 외롭고 안 우울하겠지?"
"모르겠어. 아무 것도."
"엄마가 노래 불러줄까?"
"트로트?"
"아니야. 너 좋아하는 지오디 노래 불러줄게."
"그래봤자 트로트 버전으로 하잖아."
"그렇게 안 하도록 노력해 볼께."
그리고는 나는 지오디의 거짓말을 부릅니다.
"잘가~ 가지마~ 행복해...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 줘~."
"고만해, 엄마. 차라리 안 듣는 게 더 낫겠어."
"아니, 왜?"
"엄마는 어떻게 노래만 하면 다 트로트야?"
"미안해. 그럼 다른 거 뭐 해줄까?"
"됐어. 아무 것도 하지마."
"엄마가 원숭이 해 줄까?"
원숭이란 내가 가끔 딸아이 앞에서 부리는 재롱(?)입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한 번 해 주면 금새 까르르 넘어가거든요.
"하지 마. 오늘은 안 보고싶어."
"에이~ 엄마는 하고 싶은데?"
"하지마."
"에이, 딸!"
하면서 나는 아이의 옆구리를 살살 건드립니다. 내 성화에 못 견딘 딸아이가 고운 눈을 흘기며 말합니다.
"그럼 딱 한번만이다."
"알았어."
역시 내 짐작대로 아이는 금방 까르르~ 하고 넘어갑니다. 본인의 뱃살까지 쥐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우스워죽겠다며 "그만해!"를 외칩니다. 그러면 작전은 성공한 것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아이에게도 이유 없는 우울과 외로움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냥 모르는 척 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심각해 보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전 장난으로 받아넘깁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성장해감에 있어서 감정의 기복을 쉽게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아이에게 피는 재롱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내가 늙고 힘없어졌을 때 노인성 우울증이 걸릴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아이의 우울과 외로움을 그냥 모른 척 해 버린다면 아이도 내게서 배운 그대로 내 외로움과 우울함을 외면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엄마가 딸아이의 투정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아이는 이 다음에 성인이 되고 엄마, 아빠는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 노인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한 번쯤은 돌아봐주겠지요.
그렇게 간지르기와 지오디의 노래, 급기야는 얼굴을 괴기스럽게 찌그러뜨린 채로 원숭이가 되어서는 온몸을 겅둥거리며 한참을 개그맨 노릇을 했더니 딸아이가 말합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입니다.

"내가, 엄마 때문에 웃고 산다."

이런 별 괴상한 소리 다 듣겠네. 아닌게 아니라 자식 때문에 웃고 산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제 열네 살 먹은 딸아이 입에서 나온 엄마 때문에 웃고 산다는 말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서 웃고 살거라. 눈물 많은 인생보다는 웃음 많은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언제든 네 앞에서 개그맨도 되고 삐에로도 되어주마.
지금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텔레비젼 앞에서 열심히 시청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그 사이에 나는 여기 이곳에 이렇게 내 딸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엄마 때문에 웃고 산다는 그 말... 뒷맛이 참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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