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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e-편한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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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 년전 대구에 있는 대구대학교에 자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2번씩, 부산과 대구를 왕복한다는 것, 그것도 야간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에 소흘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열심히 일했고, 대학원에서는 그 많은 공부와 숙제를 따라가기 위해서, 잠은 하루에 거의 2, 3시간정도를 잤습니다. 그래서, 버스와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은, 거의 저의 잠자리였지요~

     그 당시 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묶음으로 대충 묶은 머리, 지워진 화장, 부시시한 눈~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가 들고다니던 <짐>의 양은~ 대단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그 큰 가방에 책은 터져나갈 듯이 쑤셔넣어서, 양어깨에 메고, 한쪽손에는, 그나마 들어가지 못한 두꺼운 책들을 가슴에 안고, 나머지 한쪽손에는, 기차에서 먹다 남은 점심용 샌드위치와 음료수가 덜렁덜렁~ 들려져있었지요^^ 게다가 옷은 정장차림~ 헤~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대학교에 들어가면, 강의실보다도 화장실로 직행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세수도 하고~ 나름대로 안식^^을 취한 후에야...비로소 강의실로 갈 수가 있겠더라구요 헤~ 그런데 여러분들중에서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왜냐면~ 어떻게 그 많고 많은 장소중에서, 매점도 있고, 식당도 있는데...왜 제가,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안식^^을 취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예요~ ㅋㅋ 저도 처음에는 화장실이 그렇게 편한지 몰랐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애인용 화장실>이 말입니다~

     대구대학교는 특수교육관련 학과들로 아주 유명합니다. 그리고, 대학교(대명캠퍼스)내에, 특수학교와 센터들이 함께 있고, 또한 장애를 가진 분들께서도 많이 공부하러 오시기에, 쉽게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화장실들이, 장애인용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전 대구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단 한번도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 <편리함>에 대해서 알지 못했는데, 일단, 대구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용 화장실>의 그 <편리함>을 체험하고 난 후에는~ 거의 매니아^^ 수준이 되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편하냐구요??? 일단 넓습니다. 그래서, 무척 편하구요, 아기나, 어린 아이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하는 엄마들의 경우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정말 편리합니다. 게다가, 짐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일반 화장실보다 더 많이 확보되어져있기에, 저처럼 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짐을 깨끗하게 잘 놓아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구요,  그리고, 손잡이가 있어서, 특별히 어린이들이나, 노약자들이 앉고 일어나기에~ 정말 좋습니다. 피곤에 지친 저에게는 이 <장애인용 화장실>이 정말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간혹, 화장실안에 들어가서, 다리를 뻗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도 하고, ㅋㅋ 잠시 책을 읽기도 했었지요~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해보면서, 저는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건 장애인용 화장실이 아니라...모든 일반인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그냥 <일반인용> 화장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굳이...이렇게 <장애인용>이라고 힘써 <구별>해서 말하는 것일까...? 그냥 모든 화장실을 이렇게 만들어버리고, <일반인용>과 <장애인용>같은 구분을 아예 없애버리면 모든 사람이 다 편해지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2 얼마 전, 관공서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늦게 와서, 어쩔 수 없이, 지하도에서, 그 관공서 건물로 바로 연결되는 그 지점에서, 한참을 기다려야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서 기다리면서, 그 건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전 그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관공서 입구에는 한쪽 편에는 계단이 있고, 나머지 한쪽 편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편평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이 계단을 많이 이용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더군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말해서, 장애가 없는 정상인들-- 전 장애인과 정상인같은 용어를 정말 쓰기 싫지만, 우리 나라 말에는 달리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이 표현을 쓰게 됩니다. 부디 거부감이 드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도 엄청 거부감이 들지만, 참고 있습니다^^ -- 이 계단이 아닌, 휠체어용 도로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한쪽 손은 엄마의 손을 잡고, 나머지 손은 옆에 설치된 손잡이를 꼭 잡고, 휠체어용 도로를 웃으며 걸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엄마들...
쉬엄쉬엄, 느릿느릿...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신 채... 휠체어용 도로를 걸어가시는 중절모차림의 어르신들...
또 하나의 휠체어용 도로를 걷고 계신...상체의 무게 때문에 하체의 다리가 아파 보이는 우리 엄마또래의 아주머니들...
특정한 이유없이, 그저 그 휠체어용 도로를 걷고 있는 젊은이들...

     누가 보아도, 장애인이 아닌 <정상인>들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장애인들보다도, 정상인들이, 그 도로를 <더> 애용하고, <더>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저에겐 또다시 의문점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굳이 저기 저 도로위에, <장애인용>이라는 표지판을  <구분해서>, <눈에 띄게> 붙일 필요가 있는지...? 정상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3 얼마전 반아이 한명과 함께 은행에 갔습니다. 지로용지에 무엇인가를 쓰려고 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다가오시더니만, 자기가 글을 모른다하시며, 대신 써달라고 하십니다. 제가 아이에게 <네가 써드리렴~>하고 말하니, 아이는 아주 정성들여서, 열심히...할머니에게 물어가면서, 글을 또박또박 씁니다. 그리고는, 할머니 손을 잡고, 은행창구에 가서, 직접 할머니께서 돈을 찾으실 때까지...같이 있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도와드릴 때, 네 기분이 어떻든?>
<선생님~ 참 기분이 좋았어요. 남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일인 줄 몰랐어요. 그리고, 제가 배우고, 아는 것으로, 이렇게 남을 도와준다는 것이, 정말, 기쁜데요~ 헤헤헤~>

     아이의 미소를 옆에서 바라보면서, 문득, 이 아이가 <섬김과 도움의 진정한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워서 남을 주는 심정으로...또한 한층 더 나아가, 서로 서로가 하나님의 공급하심 아래에서, 도움과 섬김을 주고 받는...그 놀라운 <삶의 법칙>을 아이가 깨달았으면...하는 바램이 들더군요~

     ### 이제 제 글의 결론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정상인>과 <장애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어놓고 있습니다. 마치 공장의 생산품처럼, <정상>과 <불량>으로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직장도 따로...학교도 따로...심지어, 거주지마저도, 정상인들의 보이콧(boycott)으로, 장애인들이 다른 곳으로, 외롭고 소외받는 곳으로...내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2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장애인을 위한 것은 곧 정상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것들이, 실제로, 정상인들이 더 편리하고 좋게 사용하고 있고, 또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아동전문가구회사의 사장이, 그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장애인 아들을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이 좀더 편리하게, 좀 덜 다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가구 인테리어를 하고, 만들기 시작했지만, 비단, 그 가구들은 장애 아동들뿐만 아니라, 정상 아동들에게도 무척이나 편리하고 필요한 것이었고, 결국, 그것이 장애 아동과 정상 아동에 상관없이, <아동전문가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정상 아이들이 장애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돈이 조금 더 들지라도,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할지라도, 그것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장애 아동과 함께 지낸 정상 아동들이, 그냥 정상 아동들과만 함께 지낸 정상 아동들보다 훨씬 더 정서적으로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욱더 편리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정상과 장애의 구분을 없애고, 더욱더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가 아닌...그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으로...말입니다~ 다행히, 요즘,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사람들의 사고뿐만 아니라, 사회 체제 속에서도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얼마나 기쁘고 흐뭇한지 모릅니다.

      나머지 한가지는...,장애 지체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하는 우리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 예수님의 삶중에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약한 자를 도우면서, 도리어, 우리 자신이 선하게 변화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담>이라는 장애지체를 돌보면서,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관에 누워 있는 아담의 시신을 본 순간부터, 그의 삶과 죽음의 신비에 사로잡혔다. 그 때 섬광처럼 내 가슴에 와 닿은 사실은, 바로 이 장애인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치유 사역이라는 독특한 사명을 띠고 이 세상으로 보냄받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사명을 완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님의 이야기와 아담의 이야기가 유사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심원한 곳에서, 어떤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아담이 내게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었음을 알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실 때 제자들에게 친구요, 선생이요, 인도자가 되셨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담 안에서 그리고 아담을 통하여 예수님과 그들의 관계를 진정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지금도 가장 약하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을 통하여 나와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하신다. 실제로 나는 아담을 돌보면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담은 또한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나의 <연약한 심령> 가운데서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발견하고 재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예수님은 오래 전에 사셨지만, 아담은 나와 동시대에 살았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아담은 육체적으로 나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셨다. 아담은 내게 성스러운 인물이요, 거룩한 사람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 헨리 나우웬 <아담>에서 발췌함 -

      또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장애 지체들을 돌보지 않은 죄>에 대해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내 몸처럼 돌봐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시자 또한 우리의 <상급>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우리는 기도로만, 말로써만 <누가누가 어려운데~ 주님 채워주십시오~>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배고픈 지체에게, 그저 말로만 <밥먹고 힘내~>라고, 아픈 지체에게, 그저 말로만 <편하게 쉬고, 따뜻하게 하고, 약먹어~>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전,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가 <선행을 행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리라...믿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거스틴이 말한 <행함의 죄>(즉, 죄를 행하는 잘못)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영적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 정도라 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엡 4:13)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행함의 죄에서 벗어난 후 <행하지 않은 죄>(즉, 선을 행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영성이 깊어짐에 따라 회개 기도는 행한 죄에 대한 참회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지 못한 잘못에 집중하게 된다.
                                           
                                                     - 김영봉 <사귐의 기도>에서 발췌함 -

     이번 수해때...한가지 가슴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부산근교의 기장에서, 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던 장애인들이...폭우로 인해, 3명이 무너진 가건물에 깔려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뉴스에서 듣자마자...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잘못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돌보지 않은 죄...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전혀 살아갈 수 없는 장애지체들을 돌아보지 않은 죄...그리고, 선을 행하지 못한 죄...하나님 앞에 설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럽고...그리고 마음이 아프던지...하나님께 얼른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기 위해, 그 방법에 대해, 그분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이 무척 길어졌지요. 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1년전부터 있었는데...오늘에서야, 비로소, 이 글을 마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네요~

     전 종종 상상해봅니다~ 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이...아무런 구분과 분류없이, 아무런 진단이나 평가없이~ 마음껏 함께 뛰어노는 세상을요~ 그 구분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가를...깨닫게 되는 그날을요~ 그 편한 세상을요~ e-편한세상(이 편한 세상--> 이렇게 편한 세상) 말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날에는...주님나라에서는...이루어지겠지요~ 아마 그때는~ 모든 모습이 다 아름답고 똑같이 변해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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