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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복과 무스탕(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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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소에 미소만 살짝 지으시는 한 집사님께서 주일 예배를 마치시고 돌아가시면서, "사모님, 내일 시간 있으시면 저 좀 만나주세요"하셨다. 흔쾌히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무슨 상담 하실 일이 있겠거니 하고 그 집사님을 만나려고 집을 나섰다. 집사님께서는 나를 보시자마자 내 손을 잡으시더니 어디 좀 함께 가자는 것이다. 아들이 다음 주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사모님께 꼭 한복을 한 벌 해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그분의 간절한 부탁이어서 더 거절치 못하고 그분이 단골로 다니신다는 한복집엘 가게 되었다.
   내 또래라는 그곳주인 아주머니는 이런 저런 색깔의 옷감들을 내보이며 이 색깔이 곱다느니, 어울린다느니 하면서 바닥 가득 옷감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색깔을 정하지 못하고 모델이 있는 사진첩을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자주 입는 옷이 아니기 때문에 여느 옷보다 고르기가 어렵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자연인으로서 내가 입고 싶은 것과 사모로서 내가 입어야 할 색상 사이에서 좀처럼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주인 아주머니 역시 내가 사모라는 말을 듣고서는 선뜻 권하지 놋하고 계속 천들만 펼쳐대고 있는 것이 아니가?
   솔직히 나는 빨간 저고리에 남색치마, 흰고름을 단 화사한 한복에 미련이 남았지만 결국은 남색 저고리에 비둘기색 치마, 자주고름으로 주문을 하였다. 한 마디로 내 나이보다는 점잖고 고상스런 색상을 택한 것이다, 사모로서의 나 자신의 모습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사님께서는 사모님이 입고 싶은 것으로 하라고 옆에서 권하고 계셨지만 그 말씀은 바로 '사모님'다운 옷을 고르라는 말씀이기도 하였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의 모습이 계속 오락 가락하였다.
   "과감하게 내가 입고 싶은 빨간 저고리를 택할 석을 잘못한 것이 아니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 색깔을 했다고 교우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옷을 맞추고 돌아온 뒤 모처럼 새 한복을 입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내가 너무 사모라는 점을 의식하여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후회가 도기도 하고 놓쳐버린 고기가 더 커보이는 생각에 빨간 저고리에 계속 미련이 남는 것이다.
    며칠 뒤 옷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염려했던 것처럼 노색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사연을 지닌 한복을 드디어 지난 주에 처음으로 입고 교회를 갔다.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교우들의 반응이기 때문에 마치 선을 보는 심정으로 다소곳이 교우들을 맞이하였다.
   "사모님, 한복이 참 곱네요."
   "색깔이 고상해요."
    "그래, 사모님은 한복을 입어야 제격이야."
   집사님, 권사님들께서는 한마디씩 던지시며 인사를 하셨다. 그렇게 마음을 쓰며 선택한 한복이 다행히도 '사모'가 입어서 문제가 안된 것으로 감사함을 느껴야 했다. 굳이 눈치를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옷 입는 문제에 있어서 나는 자유하지 못하다. 그런 소심함을 아는 남편이 가끔, "남편인 내가 괜찮다는데, 누가 뭐란들 어떠냐"며 자신감을 부추기지만 어쩌다 저녁 예배시간에 좀 편한 옷차림으로 교회를 갔다 오면 마음은 편치 못할 때가 있다.
   어찌 이뿐이랴. 사모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 어찌 옷뿐이랴마는 때론 남들처럼 튀게도 입고 싶은 철없는 사모인 탓에 교인들 눈치를 살피며 옷을 고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겨울만 되면 추위를 유난히 타는 바람에 늘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다니곤했다. 그것을 늘 안쓰럽게 여기던 남편이 몇 년 전 여름 세일 기간을 맞아 과감하게 무스탕  한 벌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물론 겨울철이면 어느새 가장 흔해진 옷이 되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왠지 아직도 그 무스탕을 장만하지 못한 몇몇 교우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다려 그 따뜻한 무스탕을 입고 교회에 가면서도 괜히 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무스탕을 꺼내야 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무스탕 한 벌이 있음으로 나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날 수 있는데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교우들이 생각나다. 이래저래 사모는 잘 입어도 걱정, 못입어도 걱정이다.
   "주님,  그 따스한 무스탕 같은 사람이 이 겨울에 제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라 저희 교우들의 시린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을 주소서. 그래도 추위를 어쩌지 못하는 교우들을 위서는 요즘을 값도 많이 내렸다던데 무스탕 한 벌을 장만할 은혜를 주소서."
   무스탕 입기 전에 기도를 더 해야겠다. 그러면서 자조적으로 던지는 말 한마디.
   '사모된 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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