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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황목사님께...1318번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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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황목사님의 글에 대하여 전적으로 찬성하고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 순서를 밟아왔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고 내가 생각하고 배운 것이 꼭 정답일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체적으로 그럴수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과 이 사람도 그러므로 이러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런 결과에 도달했다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말은 목사님이 그렇게 보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목사님은 순수한 의미에서 진정으로 시간을 내어서 쓰셨을것입니다...



제가 미국 유학을 올때에 쟁쟁한 교회의 목사님 아들들과 같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밤이 되면 술집엘 간다던지 여자들을 방에 끌어들인다던지..

그 신학교에서 문제아들로 나타난 것이 목사님 아들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생각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하면 분명 이 아이들의 부모이신 목사님은

이중적인 생활을 하셨거나 아이들을 방치하고 교인들 심방과 교회를 키우는데에

우선순위를 둔게 틀림 없었을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정말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정말 아이들을 위하여 새벽 재단을 쌓았고 눈물과 헌신된 마음으로 양육을 했다고

그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고 그 주위분들을 통해서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니? 라고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목사님의 글에 대하여 많은 은혜와 즐거움을 가지는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 공간은 황목사님이나 저나 어느 누구든지 허심 탄회하게 자기 생각을 올릴수 있고

서로 나누는 공간이기에 어떠한 글도 다 수용할수 있고 올릴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글들에 대하여 읽는 사람의 환경과 경험 그리고 수준에 따라서

그들 스스로 판단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나름대로 은혜를 받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올린 글은 최간사님께 드리는 글 일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앞서 갈말 식구들 모두에게 드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만약 개인적인 충고나 교훈이라면 개인적인 이메일을 사용하여 도움을 주는 방법도 있을겁니다.

최간사님은 지금 스스로 하나님 앞에 풀어야 할, 하나님을 만나야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글은 정말 좋은 말씀을 주셨고 분명히 우리모두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간사님이 그 부분을 몰랐기 때문에 오늘에 온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제넘지만 욥기를 묵상하면서 깨달았던 한가지 사실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욥기가 인생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 다면 "욥이 하나님을 만났다" 일것입니다.

욥의 일생 가운데 갑자기 불어닥친 고난...

그 고난앞에서 욥의 세 친구가 칠일동안을 밤낮으로 울며 같이 아파해 줍니다.(욥2:11-13)

그러나 그 이후에 친구들은 욥에게서 이 고난에 대한 어떠한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하여 욥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지요.

특히 엘리바스의 교훈(욥4장-5장)으로 시작되는 말들은 철저하게 그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고

그 말속에 사특함이나 잘못된것을 발견할수 없습니다.


소발의 교훈(11장)도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닷의 교훈(18장)도 결국 악인은 의를 주장할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37장까지 계속 이어지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그 귀한 말들이

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드디어 욥기38장에서 41장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핵심은 인생의 잘 잘못에 근거한 책망이나 벌이 아닌

욥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데에 대한 꾸짖음이었습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라!" 였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누구신지...얼마나 전지전능하신지

그리고 인생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욥의 인생가운데 있었던 잘못에 대한 댓가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후에 욥은 깨닫게 됩니다.

42장 5절에 욥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극적인 전환점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면서 저는 42장 8절의 말씀에서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42장 8절을 보게되면,

사람의 말이 아무리 성경의 지식에 근거했고 경험에 근거하여 도움의 말을 주었어도

그것이 결국 말밖에 되지않았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42장 8절의 하반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사명감에 불탔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해주었던 모든 말들이 어려움의 당사자에게는

고통이었고 더 힘들게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무나 많은 조언과 교훈된 말들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최간사님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일만 남아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묵묵히...그리고 겸허히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기도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최간사님을 향하여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다리고 사랑으로 격려하며

끝까지 남아있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2:11-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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