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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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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였다.  아니,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의 나이 2학년하고도 5반이 되어서야 또다시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2학년 5반 언니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드랬다.
'아니, 저 언니는 시집갈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네...'하고 말이다.  
고런데, 고것이... 나도 그 나이가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한치앞도 몰르는 ...)

기도 중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받고 다시 대학생활 4년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 학교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는 나에게 흥분과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부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졸업을 하면 내 나이 2학년 9반... -역쉬 만만치 않은 나이였다.^^;;
거기다가 핵교 등록금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학교공부를 시작하면서 엄니께 공약을 한 것이 있었으니, "엄마, 내가 내 월급에는 손 안대고 다닐께."  
무삼 믿음이 그리 좋았는지, 나는 무일푼으로 학교를 댕기겠다고 공약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학교에 간 첫날... 역사는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디선가 푸짐한 몸매를 자랑하며, 큰 입을 벌려 활짝 웃고 있는 한 처자를 만난 것이었다.
"저, 나이가..?"  우리는,  대한민국사람이라면 사람을 만나서 맨 먼저 하는 호구조사 및 신상조사(?)부터 시작하였다.
아, 그런데, 이 친구가 나와 같은 나이였다.  그런데, 집도 나와 같은 방향이었다. 그 뒤의 일은 안봐도 짐작 가능 하시리라.  
우리는 하루에 거의 8시간을 붙어있어야(?)했다.  어쩔땐, 말을 하도 많이해서 대화의 주제가 없어서 힘들기까지 하였다.(자매님들은 공감하시죠?)

학교를 가기위해 우리가 만났던 곳은 대방역 플랫포옴이었다. 그 친구는 인천에서 올라오므로, 나는 그애가 탄 전철을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 친구는 전철문이 열리자 내게로 오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노오란 후리지아 한 다발이었다.
그후, 어느 날에는 그 애의 손에 나에게 주기위한 낡은 시집 한 권이 들려져있었다.
또한 가을이면, 소국 한 다발을 잊지 않고 들고 있었다.
한아름의 꽃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저 한 다발이어서 좋았다. 그것이 소박한 친구의 모습인양 내 마음에 더욱 와 닿았으니...
나도, 가끔씩 그 친구를 위해 장미 한송이를 사들고 가곤했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동생들이  그 친구에게 말하곤했다. "언니, 오늘이 생일이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저 바라보며 의미있는 웃음을 짓곤했다.  
등록금 문제로 걱정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내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30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나의 학교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은 그 친구로 인해  조금씩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온갖 장학금(성적장학금, 은혜장학금(?), 불우이웃돕기(?)장학금...)등으로 핵교를 졸업시켜 주셨다.

그애는 나의 대학 4년동안, 주께서 내게 주시기로 작정한(?) 선물이었다.  아니 그 이후에도 나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이었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직장) 그 친구의 후임으로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지금 사랑하는 아들내미랑 씨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그 친구의 집에 가기로 했다.  
소국을 한다발 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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