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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황금찬의 <행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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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랍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개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가 한 집에서 살았다.  주인은 당나귀보다 개를 더 사랑했다.
당나귀는 자주 주인을 태우고 먼길을 다녀오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아이들을 태우고 길을
떠나기도 했다.  일은 당나귀 혼자 하지만 주인의 사랑은 개가 독차지하는 것이다.  개는 하루종일 먹고 자고 하지만, 왠지 주인의 사랑은 일하는 당나귀보다 일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개가 독차지하는 것이다.  당나귀는 불평이 많았다.  주인의 사랑도 못 받으면서 일만 하는 것이 억울하고 안타까웠다.  어느 날 당나귀는 개가 어떻게 해서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가를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당나귀 눈에 개의 하루 생활이 비쳐 왔다.  개는 밥을 먹다가도 낯모르는 사람이 오면 곧 그 사실을 짖어서 주인에게 고 하였다.  더구나 수상한
사람이 오면 다급하게 짖어서 이 사실을 주인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개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가도 주인이 들어오면 개는 곧 달려나가 주인을 반겨하고 맞는 것이다.  앞발을
들고 뛰어 오르며 입으론 주인의 옷을 물기도 하고 온갖 아양을 다 부리는 것이다.
  당나귀는 개의 그 모양을 보고 깨달았다.  아, 저렇게 하니까 주인이 사랑하는구나.  나도
주인이 오면 지금 개가 하는 것처럼 저렇게 주인을 맞아야지 했다.  당나귀는 고삐를 이로
씹어 끊어 놓고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때다.  오늘은 개보다 먼저 나가 주인을 맞아야지 하고 주인 앞으로 뛰어나가 앞발을 들고 주인을 반기며 입으로는 주인의 옷을 물기도 했다.  주인은 당나귀의 이 행동에 깜짝 놀라 큰 소리를 질렀다.
  "이 당나귀가 미쳤구나."하고는 큰 몽둥이를 들고 나와 당나귀를 사정 없이 내려쳤다.
당나귀는 죽을 매를 맞고 주인에게 끌리어 저녁도 못 먹고 외양간에서 큰 고통을 당했다.
  당나귀는 생각해 보았다.  개가 그렇게 하면 주인은 개를 쓸어 주고, 또 안아 주며 사랑했다.  그런데 왜 내가 그렇게 하면 주인은 사랑하지 않고 매를 치며 밥을 굶길까?  참 이상도 하다.  당나귀는 자기가 매 맞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역시 당나귀는 당나귀였다.
  이 세상에는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있다.  그런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향기가 좋은 꽃이 어느 꽃이냐고 물을 때, 이 꽃이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가 좋은 꽃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꽃은 꽃마다 절대한 아름다움과 절대한 아름다움과 절대한 향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꽃이 이 꽃이요, 내가 가장 향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꽃은 이 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서 남에게도 나처럼 아름답게 보이리라는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또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여 남도 나와 같이 아름답게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금물이다.  남이야 어떻게 보던간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선택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나는 평생 한 가지 직업을 가졌을 뿐 그 직업 외의 다른 직업은 단 하루도 가져 본 일이 없다.  나의 직업은 남을 가르치는 것이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이 교사의 직을 나는 천직으로 생각했다.  그 교직 외에 다른 직업은 내게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한 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하여 불만이 없었다.
급료가 싸고 해도 나는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불만도 가져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묵묵히 일했을 뿐이다.
  더러 젊은 교사들이 자기 직업에 대하여 만족치 못하다는 불만의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들에게 마음에 맞는 직업을 택하여 전직하라고 권했다.
  자기 직업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그 직업에 충실할 수가 없다.  한 직업인이 자기의 직업에 충실할 수 없다면 그는 크나 작으나 발전이 없다.
  나는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사람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내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제일 좋은 직업도 제일 나쁜 작업도 없다.  다만 내가 좋다고 선택한 직업이면 그 직업이 내게는 제일 좋은 직업이 되는 것이다.  가령 하늘 아래 제일 좋은 직업이 있다 해도 그것을 내가 좋아 선택한 직업이 아니면 그것이 내게 있어서 좋은 직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재수는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수재학생이었다.  1940년 초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그 때 당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겠는가?  그를 오라는 직장이 실로 많았다.  직위도 높이 주고 봉급도 많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재수는 그 직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직장이 좋아서 선택할만한 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한 고재수는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성진 고주파 공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막노동이기 때문에 이력서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다.  그는 목도를 했고, 쇠를 실어 나르는 밀차를 밀었다.  그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를 비롯하여 한 너덧 사람 정도였다.  그는 그 막노동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이런 막노동을 하십니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때에 이 막노동이 내게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음에 안 맞는 직장에 가서 정신에 위축을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일하는 것이 비록 보수는 싸지만 좋은 직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학자의 어깨에 목도채를 놓고 무거운 쇠덩이를 메고 다니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일하다 힘에 부치면 쓰러질 때가 있어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데 불만·불평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가 할 일과 당나귀가 할 일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꽃을 갖는 일이요, 자기가 좋아 선택한 직업을 갖는 일이다.  나의 직업에 대하여 불만·불평을 갖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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