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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다양성속의 일치를 추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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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유치부 아이중에 쌍둥이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지금도 누가 언니이고 동생인지 정확히 구분이 안되는데, 그 아이들이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언니가 조금 의젓함을 느낍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은 있지만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지나칩니다.
내편이냐 네편이냐 하는 흑백논리는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점입니다.
다양함을 인정한다는것 말하기는 쉽지만 삶속에서 실천하기는 쉽지많은 않습니다.


1627년 인조 재위 5년되던때 조선은 청나라의 1차 침입을 경험하게 되는데
정묘호란입니다.
그로부터 9년뒤 청나라의 2차 침입인 병자호란으로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유린되고, 급기야 인조 임금은 남한산성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이른바 삼전도의 치욕이라 합니다.

이무렵 당시의 정부인 조정의 일반적 여론은 청나라의 위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들과 화친해서는 안된다는 척화론 일색이었습니다.
이러한 척화론의 대표격은 청음 김 상헌입니다.

조정의 여론이 명나라와의 명분에 쌓여 있을때 홀로 청나라와 화친하여 후일을
기약해야 된다는 이른바 강화론을 펼쳐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 있는데 바로
지천 최 명길입니다.

청나라의 힘에 밀려 어쩔수 없이 최명길의 강화론이 힘을 얻게 되고 결국 청에 항복문서를 최명길이 작성하여 인조께 바치려 했을때 곁에 있던 김 상헌은 그 문서를 찢고 통곡했다 합니다.

그때 찢어진 문서를 주워 모으면서 최명길이 하였다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또한 나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된다."
김상헌과 최명길, 이 두분모두 각자 처한 입장에서 조국을 사랑했던 애국자라 생각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적으로 매도하거나 정죄하는것은 유아적 수준의 사고에서 기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비유로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몸으로,
그리고 성도들을 몸의 지체로 말씀합니다.(고린도전서12장)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나와 다른 모습과
행동을 수용하고 인정해주는, 그래서 다양함속의 일치를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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