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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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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주일오전,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개구쟁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나면 마치 몸이 물먹은 솜뭉치 같이 무겁다. 설교를 하고 내려온 건지 전쟁을 하고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녀석들이 각 반 선생님들을 따라 흩어져 분반공부를 시작하면 나는 물 한잔으로 아픈 목을 달래며 잠시 숨을 돌린다.

언제부턴가 이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작년부터 교회에 나오신 K할아버지다. 몸이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서도 겨우 다니시는 이 할아버지는 거의 1시간 전에 미리 교회에 도착하셔서 예배를 준비하신다. 언젠가 우연히 들은 “아부지 저 왔습니다” 하시던 기도소리는 아직도 깊은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K할아버지께서 교회에 오시는 시간과 내가 잠시 쉬는 시간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시간이면 창문 넘어로 K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저 멀리서 보이면 얼른 뛰어나가 신발을 벗으시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실 수 있도록 부축을 해 드린다.

이렇게 열심히 예배드리는 K할아버지는 예배가 없으신 날에는 늘 동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으셔서 가끔씩 지나다니시는 동네 사람들과 잠시 나누는 이야기 나누시는 것이 유일한 일이다. 불편하신 몸 때문에 마땅히 이곳에서 하실 것도, 하실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가끔 학교에 있다가도 K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오늘 같은 좋은날도 그냥 그렇게 정류장의자에 앉으셔서 시간을 보내시고 있겠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몸이 건강한 사람들만 편히 살아 갈 수 있게 되어있는 것 같다.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도 그렇고,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장애우(障碍友)들을 위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장애인의 날에 장애우들은 잔치 대신 시위를 했다. 더 이상 장애인의 날에만 떠들썩했다가 이내 사라지는 일회성 관심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젠 우리의 모습이 바뀌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들은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일뿐 장애우들도 나와 똑같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그들의 불편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장애우라는 이유만으로 막지 말자는 것이고, 택시나 버스를 편안히 타게 해줘서 다니는 것이 힘들어 방안에만 있게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한번으로 그치는 생색이 아니라 화려하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그들을 우리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따듯한 관심을 가지자는 말이다.

사실 정말 겁나는 장애는 몸이 불편한 장애가 아니다. 예수님을 못보고, 주의 말씀을 못 듣는 영적인 장님과 귀머거리가 더 문제다. 주의 말씀 듣고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영적 앉은뱅이가 진짜 불쌍한 것이다. 교회안에있는 다수의 이 심각한 장애인들이 소수의 신체장애인들에게 보내는 냉소와 무관심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러나 이번 주일에는 비가 안 와야 할 건데 걱정이다. K할아버지는 성한 한쪽 팔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서 비가와도 우산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 지난 장애인의 날쯤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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