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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금도 눈 감으면 보이는 그 곳...(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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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벽을 넘은 내겐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담배였다. 남자고등학교다 보니 니코틴 중독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담배와 꼭 붙어사는 아이가 제법 많았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았고,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담배와 아주 친했다. 그 중에는 하루에 두 갑 이상을 피우는 골초들도 있었다. 아이들 옆으로 지나가면 진하게 풍겨오던 그 담배 냄새는 나를 너무나 괴롭게 했다.

나는 냄새에 약한 편이다. 숲의 나무냄새, 꽃 냄새, 흙냄새, 풀냄새 같은 자연적인 향은 좋아하지만, 인공적인 향은 대체로 괴롭다. 그래서 향수도 거의 쓰지 않는다. 아주 향이 순한 향수를 일년에 어쩌다 한 번 쓸 정도로 향에 약하다. 좋은 향이라도 그러한데 담배 냄새는 오죽했으랴......그래서 교무실 어느 한 귀퉁이에서 한 분의 선생님이 담배에 불을 붙이기만 해도 그 냄새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교무실에서 어느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시면 나는 쫓겨나듯 밖으로 나가야만 했었다. 눈이 따갑고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교무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교실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교실은 교무실보다 공간이 작은데 아이들 숫자는 많기 때문에 그 냄새는 몇 배로 더 강하게 나를 공격했었다. 창문을 모두 열어도, 잠깐씩 복도로 나가 심호흡을 하고 들어와도 그 냄새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를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거의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제발 내 수업시간 직전에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다오......

학교차원에서도 매일 담배와의 전쟁이 치러졌다. 화장실이나 옥상 같은 후미진 공간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아이들은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을 잡아서 혼내는 일은 주로 학생부 소속의 선생님이나 남선생님들이 담당했지만 아이들은 그 선생님들께 걸리는 것을 귀찮아했을 뿐 그리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단속하다가 지친 선생님들은 나중에는 담배 피우는 장소를 따로 지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 놓을 정도였다.

그 당시엔 소지품 검사도 자주 했다. 가장 주된 목표물은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언제든지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맥가이버칼 같은 것들이었다. 가방을 검사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옷에 있는 주머니도 검사했었는데, 아이들은 정말 교사들이 찾아내기 곤란한 자리에 잘도 숨겼었다. 양말목에 혁대의 버클 속에 소매 단에 심지어는 팬티 속에 숨기는 녀석까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숨겨놓은 담배를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전리품(?)을 잔뜩 들고 오시는데, 나는 별 소득 없이 그래서 말도 없이 그런 선생님들 뒤만 졸졸 따라가곤 했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분식집 개 삼년에 라면을 끓인다고...... 나도 드디어 아이들의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불쌍한 아이들의 기호품을 빼앗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때로 힘으로 또 때로는 애교작전(!)으로 가끔은 눈물로 내게 호소했다.
<샘요, 이거 돗대시더...>
<응? 이게 무슨 돛대야? 이걸루 가는 배가 어디 있다고? >
<하이고, 샘요, 그거는 배에 달린 돛대가 아이고요, 그기 마지막이다, 이말이시더...>
<으잉? 그래? 그럼 잘 됐네. 내가 마지막을 깨끗하게 정리해 줄게.>
<하이고, 샘요, 참말로 카니껴? 부로 카니껴? ......
애인은 빌리 조도 돗대는 안 빌리 준다 카는 말도 있니더...>

그 당시에도 이미 담배의 해악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금연을 호소하는 글은 많았었다. 양호실 벽에는 총천연색으로 제작된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이들도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한결 같이 주장했다. <나에게서 담배를 빼앗아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 이것이 그 아이들의 고백이었다......

처음엔 담배 때문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당시 판매되던 담배의 이름과 그 담배 맛에 대한 아이들의 취향까지 알게 되었다. 왜 그 상표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까지도 함께. 그리고 작전을 바꾸어 담배를 끊기가 힘들면 줄여보라고 권하게 되었다. 가끔 성질 고약한 아이들이 <말 그대로 식품인데 왜 말리느냐?>고 대들면 <그게 정말 식품이라면 연기까지 다 마셔!!! 왜 우리가 네 입에 들어갔다가 도로 토해놓는 연기를 같이 마셔야 되니? 더럽게!!!> 하며 쏘아붙이기도 했다.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앞날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던 그 아이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어린 나이 때부터 담배를 배웠고, 성인이 되기도 전에 심각하게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안정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그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길지 않은 시간에 누리는 헛된 만족감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참된 만족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참된 기쁨도 몰랐다. 부모님도 마음에 안 들고, 학교도 마음에 안 들고, 선생님들도 싫고, 사는 것도 재미없고, 공부도 재미없고......그래서 마음에 가득한 그 허무를 어찌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틈나는 대로 예수님을 전했지만 나의 노력은 그 아이들에게 한낱 조롱거리로 끝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가 참으로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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