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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대형교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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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대형교회의 문제이다.

대형교회 문제는 대형교회 그 자체보다는 대형교회로 인하여 앓게되는 시골교회와 개척교회의 상대적인 박탈 감이다. 변두리의 작은 교회의 바로 옆에 살고있는 주민들이 주일 아침이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수 있는 서울과 주변 신도시 교회의 대형버스에 가득타고 줄줄히 마을을 빠져나갈 때면 그 마을의 작은 교회 목사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형교회로 인하여 가져오게 되는 한국교회의 의식의 문제이다.

대형교회는 많은 목회자들의 목회라고 하는 영적 사역을 점점 성공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 주었다. 목회성공은 곧 대형교회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대형교회를 위하여 온갖 세상적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세속적인 흐름을 간파한 약삭빠른 출판업자들은 많은 목회 성공학에 관한 서적으로 재미를 보았고 어떤 이들은 세미나를 열어 많은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민족적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대형에 관한 한국인의 관심은 남다른 것이었다. 큰 것을 선호하는 한국 민의 심성과 그것을 통해 높아지고 싶은 목회자의 성취욕이 서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의 교인들은 크고 높은 것을 몹시 좋아한다. 크고 높다란 건물과 그리고 크고 높다란 신분에 대한 숭배심이다. 물론 그런 민족적 심성은 그렇게 짧은 기간에 한국교회가 그렇게 부흥하게 된 원인일수도 있었다. 한국의 교인들은 큰 건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목회성공을 하려면 빨리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인들은 유명인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예인출신의 목사는 목회가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한다. 많은 젊은 신학 도들이 열심히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에 유학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런 한국교회의 속성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목사라야 된다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뒤틀린 생각 때문에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들이 외면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스타를 찾아 몰려가는 한국교인들, 그리고 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고자 발버둥을 치는 목회자들...그래서 한국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큰 교회들은 더욱 커져서 10만 20만 70만이 되어지고 작은 교회는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수만명이 모인다는 장로교단의 어느 교회는 1년에 계속해서 5천명 정도의 새신자가 등록을 한다고 한다. 전도하지 않아도 1년에 5천명이나 모이는데 주일날에는 몰려오는 교인들 때문에 그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새워야할 정도로 큰 문제라고 한다. 아마도 그 교회는 결국 더 큰 예배당을 건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모두 이 대형교회의 꿈을 꾸고 있다. 그들 중 많은 분들은 대형교회의 모순됨을 열심히 비판하고 토론하지만 그들의 보이지 않는 의식 속에는 역시 대형교회를 향한 몸부림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기독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책들을 조사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형교회에서 하고있는 열린 예배를 흉내내기 위해서는 억대에 달하는 멀티시스템을 갖추어야 하고 거기에 필요한 사역 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건비를 지출을 해야한다.
대형화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투자를 해야하는 것이다. 예배당을 잘 꾸미기 위해 수 억대의 외국제 벽돌을 수입해 왔다고 자랑하던 일산의 한 장로교회 목사의 교회성장사례를 읽어  보았다. 그는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요즘 교인들은 최고품을 선호하니까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최고급의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 주일 강단 꽃 장식을 위해 두 대의 트럭에 수백만원대의 생화를 반입해오는 교회가 있다. 모두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도저히 대책이 안서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기형적 성장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 어느 기업가는 한국의 경제가 이렇게 곤두박질 치게된 원인은 작은 기업을 키울 줄 모르는  한국인의 그릇된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기업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한국인들은 제품을 고를 때 제품이 얼마나 우수 한 것인가를 떠나 유명상표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 메이커의 제품을 무조건 선호하는 소비자의 속성 때문에 대기업은 점점 더욱 커지고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져서 결국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그 나라의 경제도 살아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경제의 성패는 중소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제계의 흐름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씁슬해 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세상의 경제 논리를 하나님의 일에 대입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벌리고 있는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정책을 한번 생각해 볼만 한 것이다. 교단은 모든 힘을 다해 작은 교회를 위한 정책을 새워 나가야 한다.

우리의 교단들은 대형교회에 너무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약한 교회의 수백 배가 넘을 대형교회의 상납금은 얼마든지 총회의 정책을 움직일 수가 있겠지만 그것은 총회의 의지력 여하에 달려있는 가변적 문제이다. 큰 교회에서는 좀 더 많은 상납금을 내고 그 예산으로 작은 교회들이 힘들이지 않고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작은 교회에서도 돕는 사역자들의 도움을 얻을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대형교회 위주의 정책에서 작고 소외된 교회를 위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대형화의 억제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교회가 커지면 자꾸만 분립을 해야한다. 교회 부흥은 대형화가 아니라 분립을 통한 교회 부흥이 이루어 저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소천하신 천장웅교수님은 적당한 크기의 교회를 자주 말씀하셨다. 한꺼번에 만명이 예배를 드리기에 부족해서 3만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을 짖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를 무너트리는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교회란 크고 호화로운 예배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체험하고 고아와 과부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고 소외되고 고난받는 성도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진실로 아름다운 교회인 것이다.

목사는 자기가 섬기는 모든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고 또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도하는 목회자를 만나기 위해 차례을 기다리는 일이 없이도 언제든지 만나서 상담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총회가 지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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