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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오세택목사와 함께 피라미드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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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함'이 '거룩함'을 삼켜버리다
<오세택 목사와 함께...> 피라미드 뒤집기

기자 초년 시절, 나의 관심은 성장한 교회에 있었다. 그것도 가능하면 맨 땅에서 개척해 '자수성가' 식의 교회성장을 이뤄낸 목회자들이 주로 취재 대상이었다. 그건 목회의 성공은 곧 교인 숫자와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도를 위한 후방기지가 곧 교회라 여겼고,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전도 파워를 강하게 일궈내는 것이라 믿었다. 한국교회엔 그런 목회자들이 매우 많다. 제각기 성공담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 같이 교인들의 숫자와 거대한 교회당의 건축, 그 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대입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큰 교회당 건물이 보이면 '성공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라 생각해 버렸다.

물론 이런 시각은 얼마 못 가서 모래성 무너지듯 흩어졌다. 그것은 성서의 관심에 대한 재발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경고하고 계신 인간의 오류 하나는 크고 화려하고 많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진리를 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하나님의 나라는 부피와 질량에 있지 않음을 전제하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다가서는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 "성서는 두 가지 상징적인 성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세상을 상징하는 바벨론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이다. 그런데 이 두 성을 수식하는 단어가 다르다. 바벨론을 수식하는 단어는 언제는 '거대한(great)'이고 예루살렘을 수식하는 단어는 언제나 '거룩한(holy)'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거대한 교회가 아니라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세택 목사의 이야기였다. '피라미드 뒤집기'란 제목으로 강조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 한국교회가 가져야 할 중요한 메시지 한 편을 담고 있다.

피라미드 뒤집기

출애굽기 26장 이후로 성막에 관한 말씀이 계속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장소이며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가 행해지는 곳으로 웅장하고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셔서 제작된 성막의 외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실제 외양의 100% 모습으로 재현한 곳이 두레마을에 있다. 그곳에 가서 보면 그 규모의 초라함에 놀라게 된다. 만약 모든 재료를 성경에 나오는 대로 실제 금이나 은, 놋으로 말들었다 해도 적이 실망할 것이다. 왜 이토록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라고 하셨을까? 나는 여기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선 백성들에게 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엿보인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막에 관한 구체적인 식양을 주시지 않고 마음대로 세워 보라고 하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성막을 짓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의 신을 이기신 분을 초라한 성막에 모실 수 없다는 논리와 신학을 내세워 애굽의 신전이나 피라미드보다 더 웅장한 성막을 세우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대부분은 성막을 세우는 일에 허비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뒤집어 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이미 출애굽 역사가 있기 2000여 년 전부터 피라미드를 쌓는 역사였다. 우주의 중심에 서고 싶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따라 거대하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역사였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자신을 위해 초라한 성막을 세우라 하신 것은 이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면서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를 이제는 낮은 곳에서 타인을 섬기는 역사로 바꾸라는 뜻이다. 거대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역사로 반전시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피라미드를 뒤집으라는 뜻이다. 이런 역사의 반전을 가장 극적으로 실천하시고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높은 곳을 지향하며 신의 자라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으로 오신 분이다. 그것도 가장 비천한 자리로.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기독교 역사 120년 가운데 기독교 문화가 없다는 우려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정작 기독교 문화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정확한 개념과 세속 문화와의 차별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 문화를 창달하고 개혁되기 위해서는 성막 정신을 먼저 알고 실천해야 한다. 거대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오세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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