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사랑

대여섯 살 무렵의 일로 기억됩니다.
그 어느 날 하룻밤의 일이
참으로 생생하게 어제 일처럼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나를 들쳐 업고
대문도 없는 우리집 돌층계를 내려갑니다.

얼핏 뒤돌아 본 초가지붕 위에는
앓아 누운 엄마의 손가락 같은 가녀린 초승달이 걸려있고
그 아래 석유호롱불이 하늘거리는 방에는
휑한 눈으로 엄마가 방문을 열어놓고
우리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아버지는 으스스한 대나무 숲을 지나
붓도랑을 건너 어딘가로 부리나케 달려가십니다.

이윽고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한 불이 밝혀진
순이언니네 집 앞에 다다르고.....

언니네 집 앞에는
왁자하니 어울려 떠들어대는 동네오빠들과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게 들리는 노랫소리와
그리고 가위소리를 요란하게 철걱거리는
무지개색 박하엿장수도 보입니다.

아버지는
두 그루의 회나무를 새끼줄로 얼기설기 감아
출입구로 대신한 대문 앞에 나를 내려놓습니다.

그 사이 오며가며 동네사람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앓아 누운 엄마대신 아버지만 따라다니는 어린것이
측은해서였겠지요.

드디어 아버지와 저는 [극장]안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렇게 가끔씩
마당 넓은 순이언니 집에서
커다란 휘장을 치고 영화상영을 하였습니다.

몸이 성할 때 엄마는 책읽기도 좋아하셨지만
영화보기도 참 즐기셨습니다.

아버지는 멍석 깔아 논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릎 위에 나를 앉힙니다.
영화는 그저 무섭기만 하고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 생각만 나고 슬슬 졸음도 옵니다.

그러는 내 볼을 가만히 감싸쥐며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잘 보아........보고 가서 엄마한테 얘기해 줘야지"

엄마와 내가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갈 적에는
"그 참 별게 다 좋아서 야단이구먼"
혀를 차시기만 하시던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처연한 모습으로 영화를 보십니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
자정이 넘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면
석유호롱불 하늘거리는 따스한 방에
여직 잠들지 않고 기다린 엄마가
힘없는 팔로 가만히 나를 쓸어안으시고

그러는 우리 둘 옆에서
무뚝뚝하니 서 계시던 아버지는
모처럼 한 말씀하십니다.
"이것 좀 들어보게........."

그러시는 아버지 손에
언제 사셨는지 누른 포대종이에
오색영롱하게 반짝이든 그 박하엿이
한 덩어리로 녹아 엉켜있습니다.

그것을 말없이 내려다보다
나를 다시 보듬어 안는 엄마 눈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