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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자족과 탐욕의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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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의 대표작인 삼국지를 보면 다양한 유형의 군상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의 정황과 애환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어떤 이는 성경을 일컬어 서양의 삼국지라 말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계층의 삶의 자리와 그들 앞에 놓여진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사랑 이야기를 펼쳐나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스토리가 성경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점 가운데 하나는 자족과 자기의 분수를 지킨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정한 위치에 도달한 후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명예롭게 물러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분들이 적었던 우리 정치사의 아쉬운 점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한 후 자족할 줄 알았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 임금인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먹을 양식과 마실 것을 제공하여 들에서 지친 다윗 일행이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그후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된 후 다윗왕이 자신의 어려움을 도왔던 바르실래를 예루살렘 왕궁으로 데려가고자 했을 때 바르실래가 반응했던 태도에서 삶의 지혜와 자족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더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제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이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줄 알겠습니까? 이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그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이 나이에 잘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무엘하 19:34-35, 새번역성경)

          


이때 만일 바르실래가 노욕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갔더라면 권력의 속성에 물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바르실래 스스로 팔십세라는 나이를 들어서 노욕을 경계한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자신이 해야 할일을 다한 후 자신의 자리를 지킬줄 아는 자족함, 그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의 例(예)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하시는 자신의 주인인 엘리사가 문둥병에 걸렸던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을
치료해 주자 고침 받은 나아만이 감사의 뜻으로 사례했던 예물을 주인이 거절하고 돌려보내자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나아만을 쫓아가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얻어 왔다가 문둥병에 걸리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어쩌면 게하시가 취했던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은 나아만에게는 적은 양의 사례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사를 속이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했던,
아니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책임에 바르게 응답하지 아니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 한센스병자가 된 게하시의 사례는 자족함을 상실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의 종말이 어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르실래와 게하시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것과 지양해야 할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케 해주는 좋은 예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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