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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꿩, 지(자기)만 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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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지(자기)만 춥지!

오늘 아침처럼 제법 쌀쌀한 늦가을 어느 날,
어느 고을에 꿩 한 마리를 산채로 잡은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히히 요것을 어떻게 요리해 먹나?”
일단 털부터 뽑아 구워 먹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닥불을 따뜻하게 피워놓고 앉아 꿩의 털을 한참 뽑기 시작하던 그 사나이,
그만 실수로 꿩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털이 반이나 뽑힌 꿩은 ‘걸음아 나살려라’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쫓아가다가 포기한 이 사나이,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꿩, 지(자기)만 춥지!”

“꿩, 지만 춥지!” 제가 어렸을 때 많이 써 먹었던 말입니다.
이것은 이솝우화의 어떤 여우처럼 포도를 따먹을 수 없으니까 이를 포기하면서,
“저 포도는 시어서 먹지 못할 거야!” 했던 것과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뉘앙스에 있어서는 완전히 차이가 납니다.
아깝지만 포기해야 하는 때에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호의를 베풀어 주었는데도 이를 거절하는 이에 대하여 쓰기도하고,
독불장군 식으로 어떤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는 이에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아직 추워질 때가 아닌데 제법 바람이 차갑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어쩐지 제가 그 꿩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까 이거 참 은혜가 됩니다.
어찌 털을 뽑히고 있는 꿩이 따뜻한 모닥불을 쬐기 위해 도망하는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러나 당장은 따뜻한 모닥불이 더 좋은 것 같이 보입니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말이지요.

참 우리 주위에는 털을 뽑히고 있는 꿩과 같은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좀 추워도 도망하는 게 상책이겠지요.
도망하면 얼마 후에는 털이 다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좀 춥더라도 견디고 도망하여야 살지 않겠습니까?

명분(名分)이냐 실리(實利)냐 하는 것은 쉼 없는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싸움이 될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잠시 잠간의 실리를 챙기다 보면 실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택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명분을 따라야 할 뿐입니다. 사는 길이 이 뿐입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지요.
도망간 꿩은 벌거벗은 채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털이 다시 나도록 까지는 꽤 추울 것입니다.
춥지 않고자 자기의 털을 계속 뽑히며 따뜻한 모닥불 앞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털이 다시 자라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곧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12:25)”

順天바람직한 교회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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