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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수다쟁이 알제리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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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을 계속 내리던 비가 어쩐일로 저녁무렵에 그치고 대신 햇살이 쨍쨍 내리쬔다. 어제부터 바깥바람을 못쐬어서 갑갑해 할 아이도 그렇고 나도 인화해야 할 필름도 있는데다 몇가지 장을 봐야 할 일이 있는지라 아이의 옷을 두툼히 입혀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또 언제 비가 내리칠지 몰라 걸음을 재촉하여 유모차를 모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여자가 나를 부르는 듯 하더니 내가 못알아듣자 내소매를 부여잡는다.
얼결에 소매를 잡힌지라 고개를 돌려보니 긴스카프를 둘러쓴 여자가 날 보며 웃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처럼 유모차를 몰고있고 그 옆에 우리 한성이 또래의 꼬마가 서 있다.
<봉쥬르, 마담.. 날 못 알아 보겠어요?>
어디서 봤더라? 머리를 재빨리 굴려 회전시켰다. 목소리가 많이 낯이 익은데... 아, 그래 맞아.

          

매주 화요일 오전에 빼엠이 (PMI, 소아건강센타)에서 운영하는 유아놀이프로그램에 나랑 같이 참여하는 여인이다.
아주 어린 유아들을 상대로 매트리스 바닥에 많은 발육및 지능을 돋우는 장난감을 구비해놓고 엄마만 보며 지내기 쉬운 아기들에게 다른 아이도 보게해주고 유아교육 전문가가 있어서 여러가지 육아상담도 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인데 한성이때와는 달리 우성이는 매주 데려가지질 않고 꼭 이구실 저구실로 어쩌다 한번씩만 가게된다.
이 여인도 그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데려와서 내 옆에 앉는바람에 알게 되었는데 아이는 본인의 아이가 아니라 본인의 막내는 3살이어서 이번에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같은 건물의 아이를 대신 온종일 봐주는 그 아이의 보모이다.
그 아이는 7개월로 우리 우성이보다 약간 먼저 태어났는데 얼마나 아이에게 사랑스럽게 말을 걸고 잘 대해주는지 친엄마도 저렇게 정성스럽게 할까 싶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나의 눈길을 끈것은 그 수다스러움이다.
누가 특별히 자기에게 말을 건것도 아닌데 아이 엄마들끼리 아이키우는 내용의 무슨대화를 하다가 보면 꼭 끼어들어서 자기아이의 경험담이나 지금 보살피는 아기얘기, 그 아기의 엄마얘기, 어느새 온통 얘기의 중심이 되어있다.
어쩜 그렇게도 할 얘기가 많은지...
그런데도 그 수다떠는 품새가 그다지 밉지 않고 정겨움이 베어있다. 얼굴엔 늘 웃음이 떠나질 않고 어떤 질문에도 거리낌이 없이 자기 사생활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해댄다. 그리 큰 목소리도 아니고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얘기를 해대는데 목소리가 따악 수다떨기 안성맞춤인 톤이다.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허스키보이스이거나 거칠다면 오래듣기 좀 피곤하고 짜증스러울것도 같은데 이 여인의 말하는 톤은 부드러워서 꼭 새가 지저귀는 것 같다.
그 여인은 자녀가 4명인데 첫딸이 17살이고 지금 막내가 3살이니 어지간히 터울이 있는셈이다. 알제리에도 집이 있어서 이곳과 알제리를 정기적으로 오가고 있고 자기는 피임같은건 절대로 하지 않고 무슨 주기책정법을 사용한다는데 그 주기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는 바람에 막내가 생긴것이라고 한다. 알제리에서 6개월만에 파리로 돌아온 날 남편과 오랜만의 해후를 했는데 따악 그 날...
그 다음날 이 여인이 느낌으로 바로 알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여보, 아무래도 어젯밤 아이가 생긴 것 같아요. 벌써 3명이 있고 다 큰데 어떻게 하지요?'> 하고 물었더니 남편 왈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신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주셨으면 다 우리에게 감당할 능력이 있으니 주신것이지...>
남편이 택시운전을 한다는 이 여인은 어쩌면 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세세한 얘기까지 다 해대는지...
정말 마음에 빗장이 잠기지 않은채 활짝 다 열려 있는것만 같았다. 아니면 정말 푼수이던가...
내가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둘째아이는 첫째아이만큼 관심을 가지고  알뜰살뜰해지지가 않는것 같고 좀 덜한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또 하는말이 <둘째아이일수록 더 잘해야 돼요. 대체로 모든 부모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둘째는 나중에 커서 소외감을 느끼며 자라는 성향이 더 큰것 같아요. 세째인 경우는 좀 덜한데 둘째의 경우가 제일 어려운것 같아요....>하면서 또 자기 둘째아이의 얘기를 한참 해댔었다.

          
그래, 맞아. 그 알제리 여인이군...
그런데 실내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밖에서 마주치니 전혀 못알아보겠네. 긴 스카프로 머리를 온통 감싸고 입술도 립스틱으로 연하게 칠하고 연한 화장을 한게 분위기가 엄청 다르다. 훨씬 여성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머리를 감추니 이렇게 달라 보이는구만...
<어머, 미안합니다. 이렇게 밖에서 보니 잘 못알아 보겠군요. 제가 이번 화요일에 가지를 못해서... 잘 지냈지요?>
<오, 그럴수 있지요, 아마 제 스카프 때문일 겁니다. 밖에 나올때는 꼭 스카프를 매지요.>
<아, 그런가요? 혹시 모슬렘이세요?>
<예, 그렇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쓰는 그런 눈만 빼고 온 얼굴을 다 가리는 두건은 아니고 그냥 일반적으로 생긴 긴 스카프로 머리만 감았을 뿐이어서 내가 또 물었다.
<그럼 일일히 다 실천하는 정말 신실한 모슬렘이신가요?>
<그럼요, 저는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의 달)도 한 답니다.>
<그럼 하루에 기도도 다섯번씩 꼭 하시나요?>
<아, 그야 물론이지요. 무슨일이 있어도 한번에 5분씩 다섯번은 꼭 한답니다.>
<남편도 그러시나요?>
<아뇨, 유감스럽게도 남편은 그렇지 않아요. 게으름뱅이에요. 뭐 시간이 없다나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하루가 24시간인데 그중에서 5분씩 5번, 총 25분을 낼 시간이 없다는게 대체 말이나 되나요?>
헉! 정말 기독교 신자로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과연 시간을 정해놓고 이 여인처럼 하루에 잠시동안이나마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는가?
나는 그야말로 무늬만 기독교 교인은 아닌가?
말로만 하나님 믿는사람은 아닌가?
갑자기 이 여인이 너무나 성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저엉말...
아무리 내가 신앙의 열등생이라 한다지만 우리나라 기독교 교인의 기도시간의 평균을 내가 깎아먹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갑자기 몸둘바를 몰라졌다.
그래, 아무리 나태의 늪에 빠져 허둥거리는 나이지만... 아무리 아이들 땜에 정신이 없고 바쁘다고 징징거리는 나이지만...
아무리 밥 제때에 한번 제대로 못먹고 커피한잔 뜨거울때 여유롭게 마실 신세도 안된다며 푸념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는 정말 시간을 정해 짧은시간이나마 규칙적으로 기도로써 하나님과 만나야겠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의 기도와 문안을 기다리실텐데...

길거리에서 만난 이 수다쟁이 알제리 여인이 나의 모자람과 무늬만 크리스천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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