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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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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나?

                    박영신 교수가 보는 오늘의 한국교회

오늘의 한국교회는 안팎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갖가지 불미스런 일로 교회는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일간신문이 교회 문제를 대서특필로 보도하여 조롱거리로 삼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큰 교회 담임목사의 후계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교회 헌금의 사용 문제가 논란과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기막힌 일이다.

교회의 이미지는 이제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우리 사회의 대형 부정부패에는 언제나 기독교인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평신도로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가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웃기는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이렇게 싸잡아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고 불공평하다고 말이다. 자기 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렇게 일반화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도 할 것이다. 담임목사와 교인이 힘을 모아 이런저런 사업도 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손 치자. 하지만 그렇게 예외를 주장하고 나올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되며 그렇게 남의 모범이라며 선뜻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교인은 또 몇이나 될 것인가. 가려져 안 보이는 선한 목자도 있고 숨겨져 알려지지 않은 참된 교회들이 없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땅에 번져지게 수고하는 교인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선한 목사와 모범된 교회와 참된 교인은 짐짓 나서서 구차한 자기 변명 같은 것을 일삼지 않는다. 차라리 잠잠히 묵상하며 이 땅의 교회와 교인,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목회자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더럽혀진 이 땅의 교회를 정결케 하지 못하고 그릇된 이 땅의 평신도들과 목회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며 깊이 회개하고 통곡할 터이다.

교회의 십자가는 사방에 널려 있고 교회 간판도 곳곳에 즐비하다. 교인들의 숫자가 적은 것만은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빼곡한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놓기 위하여 주일이면 일찍 서둘러야 할 정도며 교회부지를 넓혀야 한다는 소리가 교회마다 요란하다. 그런데 이들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기에 오늘의 교인들이 이토록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일까. 강단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고 교회 안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기에 교인들이 이웃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품위 없고 무기력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교회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 한국교회는 말씀에 비춰 깊이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교회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뜻을 충성되게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십자가를 교회 장식용으로 달아 두었을 뿐 십자가의 뜻과는 무관한 세상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봐야 한다. 목사는 주님을 본받아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주의 종이라 하면서 오히려 교인들에게 군림하여 복종을 강요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교인은 개혁 전통을 따라 '만인제사장'의 소명의식을 가진 평신도로 당당하게 서 있는지, 아니면 중세 카톨릭 시대의 신도처럼 목사의 타락과 불의를 보고도 여태 그 발 밑에서 맹종을 일삼고 있는지 자신의 신앙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교회에 대하여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의 만족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천박한 문화를 교회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오늘, 교회에서 그 어떤 대안의 삶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인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주의자로 지목되어 비기독교인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큰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고들 한다. 교회는 이러한 이기주의자들이 찬송 성경 들고 모여드는 일종의 '일요 집합체'에 다름 아니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목사는 이러한 물질 추구의 욕구와 물질 획득의 과정에 대하여 질문함이 없이 이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물질의 부 자체를 축복이라 단순화시켜, 탐욕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이기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낙후한 저질의 종교인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절망의 상황이다. 어디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처지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마틴 루터도 존 칼빈도 이 땅의 교회를 개혁하기는 어렵게 되었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곤 한다. 그만큼 개혁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의 부패요 총체의 타락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여기서 절망하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는다. 이들은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질의 풍요를 보고 '천국이 별 것 아니다'라고 하면서 물질의 획득과 천국을 등식화하는 이 땅의 사이비 강단을 부수고자 할 것이다. 이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세상의 성공만을 치켜세우고 삶 자체를 온통 그 곳으로만 몰아가는 자기 안팎의 물질주의 신앙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이들 하나님의 사람은 마땅히 양의 탈을 쓴 이리를 몰아내고자 할 것이다. 엄숙한 척 가운을 걸쳤으나 세상 사람 보다 더한 탐욕과 술수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악랄한 목사들을 몰아낼 것이며, 양과 이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목사라고 하면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중직자들과 평신도들, 식별력 없는 이들 또한 교회 밖으로 몰아냄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한국교회는 마침내 썩은 것을 도려내는 아픔을 경험해야 할 때가 왔다. 더러운 욕심으로 가득한 협잡꾼처럼 아무런 부끄럼 없이 교회에서, 노회와 총회에서 온갖 추태를 부리는 철면피들을 몰아내고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참 교회로 거듭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완고한 타성의 성벽을 허물고 부패의 사슬을 떨쳐버릴 때가 온 것이다. 더러운 물을 쏟아내고 맑은 물로 채우고 어두움을 걷어치우고 밝은 빛으로 가득 메울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뤄 낼 수 있는 과업이며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다. 뜻 있는 평신도와 목회자들, 이러한 일을 감당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필자는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장과 한국사회이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회장과 녹색연합 상임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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