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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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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백양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사(校舍) 뒷편으로는 곧바로 산과 이어지는 아름다운 동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난 삼월에는 참꽃과 개나리꽃이 만개 하더니 사월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지금은 꽃창포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는 동산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토끼와 닭을 놓아 기르고 있습니다. 토끼는 벌써 여러 차례 새끼를 쳐서 지금은 수십 마리로 불어났습니다. 토끼들은 넓은 뒷동산 곳곳에 마치 산토끼 마냥 토굴을 파놓고는 제 세상인양 뛰어 놉니다. 조용한 수업시간 중 수시로 장쾌한 울음을 터트려 꿈 많은 소녀들을 웃게 하는 닭 무리들은 돌보느라 수고하는 직원들의 간식거리가 될 만큼 제법 계란을 생산합니다.

울창한 송림에서 흘러 나오는 깨끗한 공기와, 새들의 맑은 지저귐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 속의 학교입니다. 학생들에게는 더 없는 환경의 학교이며 저 역시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이전의 근무지였던 K중학과 비교해 볼 때면 더욱 그러합니다.

K중학교는 앞 뒤로 고가도로와 철도가, 우측에는 16차선 대로와 지하철이 있어 하루 종일 소음이 그칠 순간이 없으며 좌측에는 고층빌딩이 위압적인 자세로 학교를 내려다 보고 있어 사방을 어디를 둘러봐도 숨쉴 공간이 없습니다. 그나마 교내에 위치하여 맑은 공기를 내뿜던 울창한 숲인 ‘백양대’ 동산이 도로 확장 공사로 절반 이상 잘려 나간 후로는 도심의 오염된 공기를 막아줄 어떤 방패도 없는 삭막한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K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그런 열악한 환경을 심각하게 생각치 못했습니다. 오히려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공공 기관이나 은행, 쇼핑센터와 대형서점 등의 각종 문화 시설 등을 이용하는데 편리함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교통이 편리한 그 학교에 근무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4년 전 지금의 학교에 부임하고는 한동안 불편함이 많았습니다. 은행도 구청도 한번 다녀가기 만만찮고 매일 들르다시피 했던 대형서점도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소음과 공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의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크게 유익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올해를 끝으로 새로운 학교로 떠나야 합니다. 이전에는 학교를 지원할 때 교통이나 지역사회의 환경 등을 고려했으나 이제는 자연환경을 우선으로 해야겠습니다.

근래에 학생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말로만 듣던 대도시 근교의 전원 교회들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전원 교회에 대한 논란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도시 생활에 지친 영혼들이 주일 하루라도 자연 속에서 안식하며 예배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모든 교회가 도시를 떠날 수 없고, 떠나서도 안되지만 도심 속의 교회라 할지라도 세파에 지친 영혼들이 주일 하루라도 고요한 가운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며 영혼의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성가대가 이 일에 큰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은 대부분 전자음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모두가 더 크고 화려한 사운드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음과도 같은 음악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을 엮어 주는 음악은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십자가를 내려 놓고” 등의 노래가 평생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비록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당신의 육성(肉聲)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씩 목이 아파 마이크를 들고 수업 할 때가 있습니다. 열이면 열 모든 아이들이 증폭된 마이크 소리 보다 제 육성을 더 편안해 합니다. 아! 우리는 그렇게 지음 받은 존재인가 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음성도, 어린 사무엘을 찾던 여호와의 음성도 거룩한 그분의 음성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대형화된 우리 교회 안에서 음향시설의 적극적인 활용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가대 만큼은 자연 그대로인 우리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각각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맞추어 더욱 풍성한 화음을 이루며,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우리의 몸을 더욱 훈련하여 울림이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 갑시다.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소리, 높고 낮은 소리들을 조화롭게 맞추어 갑시다. 바이올린과 첼로에서 나는 따뜻한 음색과 플룻과 클라리넷의 맑은 소리에 우리의 합창이 더해져서 저 천국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영혼 그윽이 깊은 데서 울려 나는 이 가락이 진정 노래하는 심령과 또한 함께 하는 모든 성도들의 영혼을 고이 싸는 하늘의 곡조가 되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에베소서 5:19)

          
                                              <성안교회 시온성가대 회보 지휘자 칼럼>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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