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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동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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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은 친정 엄마의 일흔 번째 생신날이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스물 여섯 청년에게 시집와서 육남매를 낳아 기르신 우리 엄마는 평생 단 한 번도 기펴고 사신 날이 없으셨다. 젊었을 적에는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여섯이나 되는 시동생, 시누이들 때문에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셨고, 중년에는 유별나고 사랑없는 남편 밑에서 당신의 자식들 여섯을 기르느라 늘 고단하셨다. 노년에는 좀 달라질까 했더니 맏아들의 부도사건 이후로 7년 째 마음 졸이며 살고 계신다...

엄마의 인생에 단 하루라도 주인공이 되는 날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딸들이 제안을 했다. 이번 생신은 특별한 날이니까 잔치를 크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운 친척들 모시고 식사라도 한 끼 하자고...그 말에 대한 엄마의 대답이 <동네 부끄럽다...>였다. 맏아들이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빚쟁이 주제에 잔치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흉 본다는 것이다. 그럼 자식들하고만이라도 밖에서 밥 한 끼 먹자고 했더니 그것조차도 싫다 하신다...

그 마음 우리도 안다. 그런 자리일수록 나가고 없는 자식 생각이 더 많이 날 것이라는 걸...그래서 딸들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도 못했다. 결국 11월 30일 토요일에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집에 모여 우리끼리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엄마의 복이 여기까지인가보다...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억지로 결론을 내렸다...

그 날 큰오라버니의 아들들이 참석하기로 했다. 사는 곳을 정확히 일러주지도 않고, 집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가끔씩 막내인 내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님의 안부를 묻곤 하는 큰오라버니 때문에 나는 아직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어쩌다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혹시나 오라버니 전화일까 하여 마음이 탄다...

큰오라버니의 두 아들은 이제 스물 일곱살, 스물 다섯살 청년이다. 부도가 나서 야반도주하게 되었을 때 큰조카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마치 죄인처럼 쫓기듯이 군에 입대했다. 누구 한 사람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보낼 여유가 없었고, 면회를 갈 여유도 없었다...채권자들 상대하느라 병까지 얻으셨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던 때였다.

그 아이의 군대생활이 어땠을 지 돌이켜 헤아려 보면 그저 가슴 한 쪽이 쓰라리면서 눈물겨워진다...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울어야 했을까...

제대하고도 학교에 복학할 여유는 없었다. 맨몸으로 야반도주했기에 가족이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했던 때여서 아이는 결국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또 아이의 아버지는 결국 경제사범으로 붙들려서 실형을 살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둘째녀석은 대학 문 앞에도 못 가보고 취업해서 돈을 벌다가 형의 제대에 맞추어 입대를 했다. 그 녀석 역시 쓸쓸하기 짝이 없는 군생활을 했다...

그 녀석들이 온다고 하니 내 마음이 기쁘면서도 한 없이 쓸쓸해진다...동네 부끄럽다는 우리 엄마도 너무나 마음 아프고, 나타나지 못하는 큰오라버니도 눈물겹다...그래서 나는 내리는 비를 보며 아침부터 이렇게 줄곧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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