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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문제의 해답, 가까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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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인체의 반응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예를들면 손을들어 찬양하라(시63:4)라든지, 입술을 열어(시51:15), 또는 손바닥을 치고(시47:1),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시18:35), 귀를 기울여라(사1:2)
들으라(신6:4)등 여러 형태의 움직임이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어떤분은 성경의 70%는 동사로 되어 있다라 말할 정도로 역동성이 강조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을 보면 특이한 인체의 표현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정든 땅을 떠났던 족장 아브라함,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철저히 타의에 따라 낯선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해야 했던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것을 촉구했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길'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주시겠노라 약속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정작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아브라함이 85세가 되도록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데서 발생하기
시작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동침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여 태어났던 아이가 이스마엘인데, 그후 세월이 흘러 이스마엘이 15살 어린 동생인 이삭을 괴롭히자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임시로 먹을 떡과 마실 물만 지닌채 브엘세바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막막한 사막의 광야에서 헤메이던 두 모자,
급기야 먹을 물이 바닥났고, 생의 의욕을 상실한 모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채 마주 앉아 하늘을 향하여 크게 통곡합니다.

그때였습니다.
두모자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두모자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는데 그 방법이 특이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바가 크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창세기21:19,새번역성경 )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헤메이었던 그 광야에는 마실 샘물이 정녕 없었기에 그들은 죽겠다고 탄식했던 것일까요?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우물을 만들어 내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방황했던 그 브엘세바 광야에는 분명히 샘물이 있었음에도 미처 하갈과 이스마엘이 샘물을 볼 안목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존재했던 우물임에도 왜 하갈과 이스마엘은 그 우물을 볼수 없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성경의 답은 정확치 않지만 조금만 상상해 보면 답을 유추해 볼수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쫓겨난 이유 때문에 야기된 억울함과 욕심이 하갈의 눈을 어둡게 했지 않았을까요?

보장된 자리와 안정된 삶의 터전을 상실한 그 상실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안목까지 어둡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분명히 존재하는 샘물을 보지 못하는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처방은 존재하는 샘물을 볼수있도록 눈을 밝히신다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의 삶에 문제의 해답은 우리의 안목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앞에 닥친 여러종류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 있음을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알려 줍니다.
단지 그 해답을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니지요.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어두워진 내 눈을 밝혀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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