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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대학교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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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닌 대학은 미션 스쿨이었고 교내에 대학교회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대부분 교수들과 가족들이며 저와 같은 지방 출신 학생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대학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대학의 교목실장이 담임목사가 되며 다른 4명의 교목이 돌아가며 주일 설교를 맡습니다. 주일학교는 여전도사님이 지도를 하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에는 100여명 이상이 참석하지만 저녁 예배에는 보통 7~8명이 참석하며 대부분 학생들입니다.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심지어 몇 분의 목사님들마저도 저녁 예배는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새벽기도회도 없습니다. 아마 외국 유학생활 중 경험한 서구 기독교의  영향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저녁 예배는 주로 여전도사님이 담당했고 저는 처음 출석을 했던 신입생 때부터 반주를 맡았습니다. 사실은 어느 누구도 저를 반주자로 임명한 적이 없지만 10명도 채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니 서로가 민망한지 찬송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에 예배가 이래서야 되겠나 싶어 자진해서 반주자로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는 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시던 교수님이 성가대를 맡아 합창, 합주 모두 음악을 전공한 자들로 구성하여 너무도 아름다운 찬양을 드렸으나 저녁 예배는 피아노를 칠 사람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반주를 맡아 교회를 섬긴 것이 다른 교회의 지휘자로 옮겨갈 때가지 4년의 세월이었습니다.

임명 받지 않은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주자였지만 참으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출타했다가도 예배 시간에 늦지 않으려 캠퍼스를 가로 질러 뛰어 다닌 적도 많았고, 시험 중에는 마음이 급할 때도 많이 있었지만 감사함으로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무엇 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방학 중의 저녁 예배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던 몇몇의 학생들은 대부분 낙향하고,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중 3~4명 만이 예배에 참석을 합니다. 이마저도 주일은 도서관에 오는 크리스챤 학생들이 드물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이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언젠가 많은 눈이 내리던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맞추어 예배당에 들어서니 교인은 아무도 없고 여전도사님만 홀로 고요히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 두 사람만 드리는 예배였지만 전도사님은 반주를 하게 하셨습니다. 넓은 예배당에 예배 인도자와 반주자 두 사람이 드리는 예배가 상상이 되십니까? 설교를 하실 때면 어디 눈길 보낼 때도 없어 그냥 마주 보며 웃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전도사님은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때 저 혼자서 독식했던 그 말씀! 그 축복의 기도들이 오늘 저의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피아노 솜씨였으나 저의 작은 헌신을 주님은 지켜 보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이름도 모습도 희미하기만 한 그 여전도사님이 그립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로 급성장한 명성교회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로 유명한 명성교회의 성장배경을 두고 국내외의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를 하지만 다른 교회와 확실히 구별되는 그 교회만의 비결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10여년 전 어느 부흥회에서 명성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삼환 목사님의 간증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다른 목회자들처럼 학벌이 뛰어난 것도, 인물이 잘난것도, 설교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섬기는 교회가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어렴풋한 것은(목사님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전도사 시절에 청송 어느 농촌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밤, 교회와 붙어있는 사택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예배당쪽에서 나는 쿵쿵거리는 소리에 놀라 우산을 펼쳐 들고 예배당 문을 열어보니 곳곳에 폭우에 못이긴 천정의 진흙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떨어진 진흙더미를 세수대야에 퍼 담아 내다 버려 보지만 계속 떨어지는 흙더미가 어떻게 감당이 되지를 않아 그만 진흙이 떨어지는 곳에 가서 무릎 끓고 엎드려 등짐으로 그 흙을 받으며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비에 젖은 진흙 더미가 떨어질 때 마다 천근 만근의 무게에 온 몸이 휘청거렸지만 "하나님! 아버지 집이 꼴이 이게 뭡니까?” 울며 기도하며 밤새 흙을 저 날랐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교회를 맡겨도 잘 목회하리라 여기신 것 같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제1성가대 대원 여러분! 올 한해 우리에게 맡겨진 이 귀한 성가대원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편 10-12)

                                 <성안교회 제1성가대 회보 지휘자 칼럼> 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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