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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결국은 물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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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벤자민 화분이 하나 있다. 딸아이의 키만큼이나 큰 이 식물은 1998년 여름, 남편의 후배가 우리 집을 방문하면서 사 온 선물이다. 그 화분이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나는 몹시 아파서 병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삼사일씩 때로는 일주일씩 집을 비우다 보니 그 화분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병원출입이 끝나고 난 후에 보니 그 화분에 진드기가 무척이나 많이 붙어살고 있었다. 베란다로 내 놓고 물을 뿌려주어도 진드기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꽃집에 물어보고 약도 쳐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잎의 색이 변해가더니 결국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게 되었다.

식물원에선 알뜰한 보살핌을 받았을 녀석이 우리 집에 와서 주인 탓에 말라죽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고 또 미안하여서 나는 뒤늦게 애정을 가지고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결국 잎은 하나도 남김없이 떨어지고 줄기까지 말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그 당시 몹시 아팠던 내 모습을 닮은 듯하여 나는 그 화분을 베란다 가장 구석진 자리로 옮기고는 애써 외면하였다.

한동안 그렇게 외면하던 나는 어느 날인가 그 식물에게 말을 걸면서 물을 다시 주기 시작했다. <네가 주인을 잘못 만나 이렇게 고생하다가 죽어가는 구나. 좋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겠나.... 생각해 보니 한 없이 미안하네......네가 다시 살아주면 좋겠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물을 주면서도 나는 별 기대를 걸지 않았었다. 나무는 이제 거의 다 말라서 누가 보아도 내다버려야 할 쓰레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물을 주기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화분의 흙과 불과 10 센티미터 정도 되는 곳까지 말라죽어가고 있었던 이 나무줄기 밑 부분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작고 연약하여서 처음엔 그것이 새싹인지도 못 알아보았다. 그 여린 싹이 내 새끼손톱만큼 자랐을 때에야 나는 그 나무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서 한참을 그 나무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추운 겨울에 누구 한 사람 격려하는 이 없는 때에 힘겹게 생존을 향한 외로운 싸움을 해 왔을 그 나무가 너무나 대견하고 고마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살아주었구나...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네가 살아주었구나...고마워서 어쩌나...이 일을 어쩌나...>

나는 그 길로 가족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고 함께 축하하며 이 화분을 베란다에서 가장 좋은 위치로 옮겼다. 말라붙은 잔가지들을 다 잘라내고 화분을 걸레로 닦아낸 후에 살아있는 그 밑둥만 남기고 원줄기도 모두 자르려고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라붙은 가지는 이 나무에게는 고난의 역사다. 이 역사를 그냥 남겨두고 이 나무를 볼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자> 그래서 굵은 원가지는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채로 그 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성한 잎을 달고 예전의 아픔을 기억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처음 그 나무가 되살아나던 때의 감격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붙들고 반드시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손님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못 만나보았다. 생명이 소생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관심거리인 까닭이다.

그 나무가 그 추운 겨울에 그렇게 소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물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외면했던 나무.....그리고 거의 줄기 전체가 말라서 누가 보아도 소생할 가능성이 없어보였던 나무......그러나 그 나무에 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자 끝내 살아나 이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나무......물을 주면서도 살아날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끝내 되살아나서 나를 감격시킨 나무......

사람도 꼭 그러하다. 완전히 말라버려서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메마른 영혼일지라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다시 소생한다. 그 누구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외롭고 고단한 영혼일지라도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풍성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지속적으로 공급되던 물 때문에 말라붙어 죽어가던 나무가 살아났듯이, 생수이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만이, 우리 인생이 새롭게 되고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비결이다.

이 단순하고도 확실한 진리를 나는 날마다 그 나무를 보며 다시 확인한다. 교회에서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겉보기에는 이런 것이 문제이고 저런 것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문제는 한 가지, 생수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것임을 날마다 새롭게 확인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강팍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 나무를 떠올린다. <그래, 저 사람은 지금 물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생수의 근원되시는 주님으로 충만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지금 저 모습은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야. 때가 되면 저 사람도 생기 있는 영혼으로, 우리 주님이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말거야> 그러면 나는 대부분의 경우 더 이상 그 사람으로 인해 속이 상하지 않게 되고, 대신 그 영혼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진다. 그리고 나 역시도 물이 모자라서 저렇게 메마른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참된 생수이신 주님, 나는 매순간 주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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