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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린 날로의 초대-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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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편'도 이 글도 모두 저의 이야기 입니다.^^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소설'이라는 해괴한 소문이...ㅎㅎㅎ

          

"자~ 둘 씩 짝지어서 서봐"
계이언니는 우리를 동네 공터에 모아서 춤판(?)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언니는 중학생이었다.

"자, 이제 남자역, 여자역을 가르는 거야"
항상 울언니와 한 짝꿍이었던 나는 언제나...남자역이었다. 키가 큰 언니가 남자역이 딱인데...언니는 항상 '어리숙한' 나를 남자역할을 시켰다.ㅜ.ㅜ
여하간...그 공터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감수광'(?)이라든지...'군밤타령'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곤했었다. 물론 춤선생(?)은 계이언니였다.

사실...'계이'언니의 이름조차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7살이었고, 그때까지 글을 알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일공부'를 하는 친구덜을 부럽워했기는 했다.

언니는 그 동네에서 우리 꼬마들을 데리고 무언가를 하기를 좋아했다. 우리들은-거의 10명이상이었던 것 같다- 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 '순종'이었다.
모든 게임과 율동은 그 언니와 함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은 그 언니가 왜 어린 우리들과 함께 해 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곳을 떠나서, 서울에서의 생활은 별로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한 영상이 떠오른다.
한 꼬마(나)가 비가 몹시 오던 날, 우산을 받쳐들고, 언덕배기에 있는 교회를 올라갔다.
이른 새벽이었다.

울 언냐는 언제나 내가 회유를 해야했다.
그 회유물은...
"언냐...'10원' 줄테니...교회 가자"하면... 언냐는 못 이긴 척 따라나서곤 했다.

그당시 나는 매일 밤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내용은,
"하나님, 울 집 도둑 안들게 해주세요. 강도 안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도 생략된 기도...
도둑이 왔다가 자신의 사재라도 털어서 놓고가야만 하는 그런 집에 살면서, 나는 그런 웃긴 기도를 드렸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으로 울 집은 한 번도 '도선생', '강선생'이 들어오시질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인상적인 사건을 겪게 되었다.
물론 사건이랄 것 까진 없지만...
그때, 생전 첨으로 망원경이란 것을 보게 되었다.

망원경으로 저 멀리의 세계를 보면서...
나는 '내 눈으로 보는 세계'와 '망원경을 통해 보는 세계'와의 그 이질감과 상이성에 당황했다.  
그것이 어떻게 절대자에게까지 생각이 미친 사건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은...뭔가 다른 것, 다른 힘...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 후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가 어릴적 사탕하나 먹으려고, 교회를 왔어도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시고 그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예배시간에 그렇게 말씀해주신 전도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는 마음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날서부터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그분의 사랑에 감격했고, 한없이 죄스럽기도 했다.


다시 계이 언니의 이야기를 하겠다.
시간이 흘렀어도, 간혹 그 언니가 많이 생각나곤했다.
가끔 힘이 들때면...먼 하늘을 보며, 얼굴도 기억 나지 않는 그 언니의 이름을 불러보곤했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그 언니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몇 년 전에 나는 엄마와의 대화 중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엄마, 계이언니...참 좋았는데..."
"음~ 걔...참 착했지...아이들 많이 데리고 다녔지. 맞아. 걔가 너랑 다른 아이들 모두 교회데리고 다녔잖아~"
"네?"나는 깜짝 놀랐다.
"걔가 주일학교 선생이었지 아마~"

난 참 어리석다.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교회를 다녔냐고 물을 때마다 6~7살 때라고 말하곤 했었는데...그것이 그 언니와 함께, 그 언니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왜 연결하진 못했을까?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 서울에 올라와서도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언니가 왜 어린 우리들과 함께 해 주었는지의 오랜 의문이 풀렸다.

계이언니는 내가 '주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기 위해서,
나를 그분의 집에 '처음으로' 인도해 주었던 소중한 분이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에 계이언니라는 소중한 만남을 통해서,
지금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열매를 기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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