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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10 - 10년만의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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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회 최연장자였던 양 집사님이 소천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발인예배에 참석하러 가던 중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목사님…미리 말씀 드리지 못혀서 죄송헌디라우. 하관예배 쪼까 드려주시면 좋겄는디라우."

  양 집사님의 사위였습니다.
  나는 그러마고 하고 곧장 장지(葬地)로 향했습니다.
  장지는 마을어귀 야트막한 산 속에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장지까지 동행한 초면의 광주 모 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를 막 시작하려는데, 양 집사님의 두 자녀와 사위,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들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 보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서둘러 예배당을 벗어나는 그들에게 다가간 나는 먼저 외아들 최 집사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겸연쩍은 얼굴로 웃어보이며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내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그 다음, 나는 교회 마당에 서 있는 사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시내 모 교회 안수집사로 육십을 바라보는 그가 내 손을 맞잡고 애써 웃어보이며 수고하셨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의 눈에서 일종의 적대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를 마당 한 쪽으로 이끌자,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허구만이라우…다시는 이 교회에 발을 안 들여 놀라고 했는디…그제께 목사님이 우리 장모님 시신을 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봄서 얼마나 가슴이 찡했는지……예배 때마다 혼신을 다해 말씀을 주시는 목사님을 봄서 한편으론 고마움서도 또 한편으론 마음이 겁나 괴로왔당께라우."

  "집사님, 뭣 때문에 그러는지 말씀해 보세요. 오늘 아니면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이 교회에 진료소서 일하는 여자 있지라우?"

  "제가 이 곳에 온 뒤 두세 차례 나왔었는데, 지난 해 진료소가 폐쇄되고 나서는 못봤습니다만, 근데 왜요?"

  "사실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안에 한(恨)이 맺혔지라우. 십 년도 더 됐을 것이구만요. 내가 우리 장인어른을 전도할라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라우. 광주바닥에선 알아주는 유학자셨는디…내가 틈만 나면 와서 전도하고 해서…이 교회도 한 두어번 나왔을 거구만이라우.
  근디 언제부턴가 간이 나빠져가꼬 누구 한나나 옆에서 돌봐드려야 쓸텐디 사람이 있어야지라우. 그래서 내가 여그 진료소장헌테 전화해가꼬 우리 장인어른 좀 부탁했지라우. 교회 다닌당께 안심이 안 됐겄소.
  근디 그 여자가 몇 번 왔다 갔다 허더니 '최 영감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지라우. 그 일로 우리 장인어른이 교회 다니는 것들 상종 못할 것들이라고 얼마나 역정을 내셨는지…그것이 끝이였지라우.
  사실 오늘 여그 온 것도 그 여자 낯바닥 한 번 볼라고 왔지라우. 우리 장인 구원 못 시킨 것 책임져라고 할라고 왔당께라우. 성질같애서는 만나면 콱 죽여불고 싶었당께라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집사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에 다니던 성도와의 사이에 그런 일을 있었다니 담임목사인 제 책임만 같군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오매, 목사님, 뭔 말씀을 고로코롬 허신당가요. 그 일은 목사님이 오시기 훨씬 전 일인디라우…내 잘못이 크구만이라우. 그 일만 아니었으면 목사님께 장례를 다 맡겨드렸을텐디…죄송허구만요."

  "집사님, 장례를 어떤 목사님이 집례하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이 곳까지 와서 장례를 치러준 그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집사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집사님이 그 여자분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십년도 더 지났어도 집사님 마음에 그 여자분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제 그만 용서하세요. 용서하고 나면 미움과 분노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양 집사님의 주검이 남은 식구들에게 용서와 희망의 씨앗으로 심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점심식사 준비가 다 됐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극구 사양하며 그냥 가겠다는 그들을 나와 성도들이 예배당으로 인도했습니다.

  내 마음은 군대에 갈 아들에게 고기국 한 그릇 끓여주고 그 먹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어머니마냥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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