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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푼수당 총재가 사랑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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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룹 홍보실에서 사보(社報)에 올릴 글을 하나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주제가 정해진 것은 아니였지만 직장생활과 관련된 내용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쓴 글은 <행복이라는 것은...>이었다. 36세 때 일이다.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사원이 감히 행복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으니 겁이 없었다고 할까?
그 글 중간의 한 부분만 보면 이런 내용이다.

<인간은 탄생 그 자체가 기쁨이요,축복이다. 성,년령,직업이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삶의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12년의 회사 생활을 통해 무엇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를 내가 하는 일 아주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일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었다. 하루 8시간 망치질만 하는 작업자가 그일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망치질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삶 자체가 행복할 것이다. 삶의 절반을 직장에서 보내는 우리에게 이것은 출근 시간을 기다려지게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글을 쓰고 나서 나는 상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참 많이 들었다. 아마 그때 2만명에 가까운 그룹사 직원들이 이글을 읽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그 깊이가 더해 간다고 할까?

나의 직장생활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상사와 직원들을 만나고 또 하나는 아직껏 매너리즘에 빠진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원칙과 정도를 지키려 하고 술 담배도 모르며 상사에게 비판도 잘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들은 분명 상사나 직원과 갈등의 소지를 가지고 있을 지언정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조건들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상사와 직원들을 자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이유는 한가지,바로 그분들을 나의 고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사와 직원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도와주는 것 뿐이다. 성격도,자라난 환경도,생활도 다르지만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방향은 같기 때문이다.

매너리즘도 결국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바라보고 변화를 추구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쁜것도 없다. 아마 일하는 시간과 노는(?)시간이 반반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서론이 길어진것 같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직장이 아니고 가정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또 나의 가정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직껏 결혼 생활에 권태감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의 가슴이 여자보다는 넓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솔직히 그 깊이는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이 넓다는 것은 이해할 일도,참아야 할 일도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한 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씩 융화시키며 동질화의 과정을 걷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이어야 한다. 이것은 회사에서 느끼는 <같은 방향을 가기 때문에 도와야 하는 것>의 물리적인 변화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어느 한 쪽이 무언가를 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또 남자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넓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 21년째인 지금까지도 <여보,당신>이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는 우리 부부이다. 어색함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10년도 되지않은 부부가 전혀 부끄럽지(?) 않게 그런 소리를 하는걸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일까?

아침 6시,나는 아내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며 중요한 기사들을 요약하여 말해준다. 저녁 6시,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는 것도 이 시간인데 씻기도 전에 들어가는 곳이 또 부엌이다. 저녁 준비하는 아내가 만든 음식들을 먹어보고 할 일이 있으면 거들어 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식사시간이나, 식사가 끝난 후에도 가능한 대화를 한다. 마치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하루 일과를 엄마에게 말 해주는 것처럼,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대화의 소재로 삼아 잠들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푼수>라는 단어는 국어 사전에서도 찾지 못했다. 다만 인터넷 대백과 사전에 <약간 모자라거나 어리섞은 사람> 정도의 속어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갈말에서 내가 <푼수>로 불린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맞는 말인것 같고 참 절묘한 표현이라는 느낌도 든다.

직장에서도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퇴출 1순위 이겠지만 가정에서의 일로 <푼수>라는 소리를 듣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꼭 들어야 하는 소리가 아닌가 싶어진다. 또 <푼수>와<총재>라는 말이 저도요님의 <왕푼수>라는 말처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이 있기는 하지만 <푼수당>의 <총재>라고 하니 그것도 괜찮은 말 같기도 하다.

이 푼수당의 총재가 사랑하는것....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과 가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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