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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11 - 반쪽짜리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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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도 한풀 꺾인 9월,
  교역자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목사님, 저…광주에 왔는데요…오늘 시간 있으세요?"

  10년 가까이 필리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이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교역자회가 있는 교회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교역자회가 끝난 후,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생활은 좀 어때요?"
  "…좋지요 뭐…."

  그러면서 한참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실은 좀 어렵네요."
  "……."
  "교단이 갈라지고 나서 선교후원이 많이 줄었어요. 전에 후원해 주던 교회들도 교단이 갈라지고 나서는 후원을 그냥 끊어버리더라구요."
  "아무 연락도 없이요?"
  "예…."

  식사를 마치고 친분 있는 목사님 몇 분에게 후원을 부탁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나는 선교사님을 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리면서 작은 '후원'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열흘쯤 지나 임시노회에서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 선교사님의 근황에 대해 넌즈시 물었습니다. 그는 어렵지 않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얼마 전 교단의 영향력 있는 어느 목사님이 선교지를 방문해서는 자기 아들을 선교사로 내보낼 예정이라면서, 얼마동안 자기 아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어학 연수를 시켜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님 사모님이 어렵겠다고 대답을 한 모양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그 목사님 교회를 비롯해서 그 목사님이 관계하는 선교회 및 다른 교회의 후원까지 한꺼번에 다 끊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역이 어렵게 된거지요.
  …사실 선교지에서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후원자들은 얼마나 많은 요구를 하는지 몰라요. '나와라' '들어가라' '사역보고해라' '어학연수 시켜주라'는 등 요구가 참 많아요……선교사역도 갈수록 힘들어지네요. 그래서 자리만 있으면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선교사들이 많아지는지도 모르죠…."

  말 끝을 흐리는 한 선교사님의 눈에는 말로 다 못할 슬픔같은 것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선교사님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시죠? 지난번에 찾아갔을 때 고마웠습니다. 대개 동기 목사님이라고 해도 선교사가 찾아오면 피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만나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사실 한국에 다녀온 후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문제로 실패한 선교사라는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힘든 생활이기는 하지만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려고 합니다.……아무튼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후원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감정은 반가움보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간혹 찾아오는 선교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재정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교회 목회자로서 후원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인해 며칠씩 몸살을 앓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교사님을 배웅하면서 '얼마간 후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후원 약속을 한 건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선교사님이 너무너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개인적으로 후원금을 보내드리고는 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뿐인데, 선교사님은 줄곧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그런 중에서도 선교사님의 이 한 마디는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요즘엔 선교지에서 죽기로 각오한 선교사 보기가 어렵다고….
  그런데 반대로 자기 욕심 버리고 목숨 걸고 선교하는 사람 보기도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것이 잘 어우러져야 진정한 의미의 선교가 시작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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