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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회개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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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에 보면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이 한 일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음을 알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이 말은 스스로 자신들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죄사함을 받을 수 없으며,
또한 주님을 영접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복음은
회개를 요구하면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예수님의 이 말씀 역시 회개 없는 믿음은
아침 안개와 같이 허망한 믿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 5장 31절에 보면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일은
회개케 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마지막 말씀을 보아도 확실하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이상에서 언급한 사실을 생각하면 회개와 그리스도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회개에 대해서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교회들은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주체가 이동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사람들의 뜻과 계획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워하는 일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계획하고 행동해야 살 맛이 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을 하면서 그 가운데서
자신도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하기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인하는 회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설교는 대체로 회개에 대한 내용보다는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이 회개보다는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경향은
인간의 이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며
그와 비례해서 율법의 권위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서 7장 7절에서는 사람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0절에서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는 율법을 선포하는 목적은
그것을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선포한 의도는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고
누구도 스스로의 행위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여(롬 3:20)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고
그 은혜만 갈급하도록 회개하게 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
자신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회개를 할텐데
인간의 죄인됨을 알게 해 주는 율법의 권위가 무너지니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성의 힘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그러니 죄의 깊이를 알 수 없으며,
자신의 죄의 깊이를 모르니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이 깊어지고,
그렇게 되니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게 되고,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니
회개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 합리주의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율법은 지켜도 좋고 지키지 않아도
좋은 교훈서 정도로 착각하고 있을 지 모른다.
물론 이런 현상은 율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성경 말씀 자체를 불경이나 도덕경을 읽을 때와 같이
좋은 말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물론 교인들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씀이 갖는 절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현상은 그만큼 말씀에 대한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말씀을 읽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그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즉 그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을 하면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져도 좋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말씀을 읽을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기에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만 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받아주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 되어야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쨌든 회개 없는 믿음은 없으며 회개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는
망한다고 하셨던 것이다.

매인교회:http://cafe.daum.net/main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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