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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개똥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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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금요일(11. 29.) 오후, 어느 골목을 지나가다가 개똥을 밟았습니다. 골목을 지나는데 여기저기 개똥이 흩어져 있길래 그 골목길을 조심조심 걸었던 것인데, 그 무시무시한 지뢰밭을 무사히 지났다고 안도한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내 발에 부드럽지만 ‘아차!’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엇인가가 밟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나나 껍질을 밟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기분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게 나는 생활환경의 변화로 한동안은 밟아보지 못했던 개똥을 밟았습니다.

    개똥을 밟고 나서 한동안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흙에 신발을 비비기도 하고, 마침 비가 내려 생긴 웅덩이에 신발을 씻기도 했지요. 그렇게 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금새 가라앉지를 않더군요.

    그렇게 개똥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찜찜한 기분이 삶에 대한 성찰로 바뀌었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만든 건 이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은 내 것이었던 것이 밖으로 나오면 왜 더럽게 생각될까? 한동안은 내 것이었던 똥이 왜 그렇게 싫어지고 더럽게 생각되는 것일까?’

    이 물음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성찰은 내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 성찰의 끝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됨을 알고 겸허하게 살아야하는 존재라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잘 버릴 줄 알아야 성숙하게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잘난 것 같고 고귀해 보이는 것 같은 존재일지라도 똥을 만들고 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고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배설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배설하는 일에서 제외될만한 특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버릴 것이 생기는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완벽하다 자신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현 시점에서 난 항상 옳다고,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나는 버릴 것이 많은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내가 똥을 누어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할 때 그 겸허함을 가진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 줄 알게 됩니다. 한 때는 내 것이라고, 내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것조차도 어쩌면 버려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겸허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버려야 하는 것인 줄 알 때 과감하게 그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성숙은 모든 것을 있는대로 받아들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버릴 것을 가려내어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맺는 삶의 열매입니다. 이 버림을 그릇되고 미숙한 삶의 습관과 생각으로부터 돌아서는 결단, 무분별하게 이어지는 삶의 무질서에 대한 절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 인간으로서의 내 존재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결단과 절제, 버림을 통해 성숙해가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면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놓지 않기에 날마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람으로서 내 삶을 책임지고 싶습니다. 은밀한 공간에서는 남몰래 똥을 누어야하는 존재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버릴 것을 버렸기에 향기를 내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난 지난 금요일에 똥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똥만 밟은 것이 아니라 깨달음도 함께 밟았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운동화를 빨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 밟은 깨달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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