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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13 - 탕수육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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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인터폰 소리에 현관문을 열자, 철가방을 든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저…여기…목사님 댁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거실에 탕수육 한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아까 어느 분이 찾아와서 주문하고 가셨거든요. 돈도 받았어요. 참, 이거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쪽지였습니다. 수줍게 접혀 있는 쪽지를 펴자 정갈한 글씨들이 눈에 가득 실렸습니다. 

          
    목사님!
    찾아 뵙고자 했지만 편히 쉬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냥 돌아 갑니다.
    맛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맛있게 잡수시고 힘 내십시오.  

          
  공 집사님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실 광주로 사역지를 옮긴 후, 기뻐할 새도 없이 25평 슬라브집을 예배당과 사택으로 나누어 사용할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겁을 내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부분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세간살이도 다 들어가지 않는 10여평 남짓한 사택이며, 목회자 생활비 지출도 여의치 않은 재정상태며, 무슨 일을 제안하면 "돈이 있어야 하지라우!"하는 제직들이며, 이 모든 것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외치던 첫 마음이 점점 식어지면서 자꾸만 전임지가 그리워졌습니다. 200여명의 성도와 넉넉한 재정, 계획, 실천, 성취….

  그런데…그렇게 한 해 두 해 가면서 내 마음 속에선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나? 이 곳에서 더 이상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목회에 대한 갈망이 검버섯같은 아픔으로 고개를 쳐들곤 했습니다.

  그런 중에 나는 교회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아파트를 얻어 세간살이를 옮기고, 사택으로 사용해 오던 공간을 터서 예배당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여러 해 동안 놓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광주로 와서 두번째 맞은 겨울 어느 날, 나는 심한 열을 동반한 감기 몸살로 몸져 눕고 말았습니다.
  이제막 일을 새로 시작한 아내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섬마을 보건진료소에 가 있던 터였고, 또 얼마 전 사택을 아파트로 옮겨서 교회와 사택과의 거리가 멀어진 관계로 "목사님이 편찮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성도라 할지라도 짐짓 들여다 볼 엄두를 못내고 있던 터였습니다.
  
  집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감기 몸살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버려진 지 오래된 고목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간혹 "주님…"하고 불러보았지만 순간순간 혼자라는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나는 머리맡에 펴둔 성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세기 13:14)
  새벽예배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찬송가 가사를 읽는 것으로 찬송을 대신한 후 나누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 순간 내 안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바라느냐?…"
  "……."
  "새 예배당과 사택을 지을만한 재정과 그것을 감당할 성도가 아니냐? 그래서 목사로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냐?"
  "……."
  "…부탁한다…네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사방을 둘러봐라……만약…계속해서 네가  생각하는 한 가지만 바라보면 네가 선 자리는 언제까지나 변두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선 자리에서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네가 선 자리는 중심이 될 것이다……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예배당…사택…재정 확충…다 좋다…그러나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좋겠구나……괜한 것으로 힘들어 하는 너를 보니 내 마음이 더 아프구나…."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세워둔 목회계획과 목회철학이 허풍선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네가 본 것도 전부는 아니다…사람들이 겪는 대개의 아픔은 전체를 다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그런데 네가 겪는 아픔도 그렇지 않느냐?……물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잘 극복할 줄 믿는다……이 고비를 통해 나를 향한 너의 섬김과 믿음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다시 새 마음으로 시작할 줄 믿는다…."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주님이 맡겨주신 사역에 만족하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펼쳐놓은 성경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송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기쁘게 하고 또한 성도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섬기는 자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주님을 향한 나의 입맞춤이었습니다.

  그런데…인터폰이 울린 것입니다. 

          
    목사님!
    찾아 뵙고자 했지만 편히 쉬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냥 돌아 갑니다.
    맛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맛있게 잡수시고 힘 내십시오.    

          
  한여름에도 천식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집사님이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 타고 사택 근처까지 왔다가 '쉬는 데 방해 될까 봐'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해 보이는 집사님을 통해 찾아 오셔서 위로와 격려의 입맞춤을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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