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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선교에 대한 제안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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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목사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모순인것 같지만 용기를 내어 몇자 적어 봅니다.

우리는 보통 전도는 동문화권지역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선교란 타 문화권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전도와 선교를 혼합하여 복음전파라는 의미속에서 혼용하여 사용한다는 전제적 정의를 해 놓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선교를 단순히 불신자에게 찾아가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외침과 그 방법론에 치우치는 것 같고, 어떤 의미에서는 선교사에게 돈을 보내는 것 같은 것을 선교라고 못박고 있기도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좁은 시야입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왜 선교를 의도하셨고 어떻게 이루어 가고 계시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에 대한 초창기적 요청은 모세오경일 것입니다. 먼저 언약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 자체가 선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의 관계를 통해 주변의 가나안 족장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영적교통과 만남을 통해 주변 가나안의 이방인들에게(아브라함에게는 이장인임) 구별된 삶과 하나님의 복을 누림을 보게 하고 그들에게 이목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 야곱에게도 동일한 기근을 당하게 하심으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애굽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통해 이방인인 애굽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선교적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똑같이 출애굽시대에도 택한 백성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게 여호와의 전쟁을 통하여 승리했는데 그것을 보고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리는 역사가 선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역사를 추적하다보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선교를 이루어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힌트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불신자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역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방법론적 접근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그리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바울서신의 말씀을 따른다면 신자 개개인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직접전도)할 때 많은 훈련과 자기 다스림이 있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강하게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전도명령을 다했다고 하는 자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언약의 족장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세상과 다른 고집있는 구별된 삶을 살아갈려고 하는 몸부림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지름길이 아닌가 감히 제안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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