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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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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서 가족창 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마다 갈고 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특히 직분자의 가정일수록 의상을 맞추고 악기도 동원하는 등 능숙하고 수준 높은 음악을 선 보이며 더욱 열기를 더해 갑니다.

다음은 교회를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새가족의 차례입니다. 서툴었지만 열심히 노래하던 중 그만 제 음정과 박자를 잃어 버려 노래는 엉뚱하게 흘렀고 겨우 이리저리 곡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회중석에서는 작은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이 가족은 당황하여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침 다음 차례는 담임 목사님의 가정이었습니다. 모두들 기대어린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봅니다. 예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열창하시던 목사님의 음성이 곡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갑자기 뒤집혀지며 이상한 음정을 냈습니다. 평소 찬양을 아름답게 잘 부르던 목사님이었기 때문에 그 소리에 온 교우들이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목사님은 은퇴를 하셨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장례를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던 유가족과 교인들은 목사님의 한 낡은 수첩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가족창 대회가 있었다. 모두들 잘하였는데 그만 새신자 가정이 실수를 하여 교인들에게 웃음을 샀고 그들은 무안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마침 우리 가정이 다음 차례였고 찬양 중에 내가 고의로 실수를 했더니 온 교인들이 크게 웃었다. 순간 앞서 실수했던 그 가족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동병상련의 기분과 함께 자신들의 실수가 함께 덮어지는데 대한 안도감의 미소였으리라. 나는 교인들에게 창피를 당했으나 그것으로 그들의 무안함이 덜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글을 읽은 유가족과 교인들은 목사님의 깊은 뜻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아버지가 제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규모가 큰 시온성가대의 지휘자로 섬기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지휘자의 언행 하나 하나가 대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잘 다듬어진 인격이라면 참으로 좋을 텐데 아직은 젊은 혈기가 불쑥 불쑥 솟구치는 미성숙한 인격이라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둘러서라도 해야만 하는 지휘자라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스물 둘 어린 나이에 성가대 지휘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늘 대접만 받았고 군대에서조차 훈련병, 이등병 계급장 달고 고급 장교들의 섬김만 받아왔으니 알게 모르게 나의 말과 행실에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위선과 우월감만 가득 차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스스로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새가족에게 위로가 된 어느 목사님처럼, 옆 자리의 키가 작은 대원을 위하여 신발을 벗고 찬양을 드린 우리성가대의 어떤 분처럼, 아니 아무런 흠과 티도 없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신 어린양 예수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언제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아가렵니다.

어느 순간도 제 자신이 다 되었다고 생각 않고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계속 달려갈 것을 우리 주님 부활하신 이 좋은 계절에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14)

          
                             <성안교회 시온성가대회보 지휘자 칼럼 중> 200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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