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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15 - 미녀삼총사와 꽃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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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린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소현아, 너는 내가 더 좋아…주현이가 더 좋아?"

  지윤이의 질문에 소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풀석 앉았습니다. '미녀삼총사' 중 맏이뻘인 주현이는 오늘따라 뾰로뚱한 얼굴로 바로 뒤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 더 좋아, 응?…."
  "몰라~아."

  그 소리가 얼마나 컸든지 예배를 막 시작하려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는 나의 '주의'로 시작되었습니다. 피아노도…반주자도 없이 몇 안되는 아이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지만, 찬송을 부르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아침 참새들의 지저귐같은 맑은 가락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썰물처럼 교회 마당으로 빠져나온 아이들은 밤 사이 내린 눈으로 크고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예배당 주변을 돌아본 뒤 '삼총사'에게 다가갔습니다.

  "너희들 뭐하니?"
  "눈사람 만들고 있어요."
  "…참 잘 만드는구나……근데, 너희들 예배시간에 보니까…무슨 일 있는 것 같던데…."
  "……"
  
  아무 대답이 없자 나는 마당 한 쪽을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자…여길 좀 봐라…"
  거기엔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버려진 꽃들이 우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꽃꽂이했다가 버린 것이잖아요…."

  "그래, 맞다…어디 보자…여기 국화도 있고…글라디올러스도 있고…이것은 장미…이것은 카네이션…그러고 보니 해바라기도 있구나……얘들아, 이 꽃들 좀 봐라. 모양뿐만 아니라 색깔도 다 다르지?…보라색, 분홍색, 빨강색, 노랑색……목사님이 볼 때 너희들도 이 꽃처럼 모양도 색깔도 다 다르다…근데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 친해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과 같은 거란다……자, 이게 뭔지 아는 사람?…"

  나는 꽃을 꽂았던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초록색 스폰지를 가리키면서 물었습니다.
  "……"
  "이건 오아시스야. 오·아·시·스……너희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니?"
  "사막에 있는 거잖아요?"
  소현이가 말했습니다.
  "아…사막에 있는 우물…."
  주현이도 생각났다는 듯 외쳤습니다.

  "그래…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나 동물한테 생명과도 같은 물을 공급하는 우물이 바로 오아시스란다…근데 꽃꽂이용 스폰지 역시 오아시스라고 하는 것이 재밌잖니?"
  "꽃에게 물을 공급해주니까 그런가 봐요!"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어보이는 지윤이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근데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간이 가면 시들게 마련이고, 또 꽃에게 물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도 몇 번 사용하고 나면 망가지게 마련이란다…그래서 이런 꽃무덤이 생긴 거야……여기 이 꽃은 어제 새벽까지도 예배당에 있던 거야…이 오아시스도 마찬가지고….
  …너희들이 무슨 이유로 얼굴을 서로 붉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겠구나…이 꽃들을 좀 봐라. 모두 한데 어울려 조금씩 썩어가고 있잖니?…언젠가는 완전히 썩어서 다른 꽃과 나무의 거름이 되겠지!…거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꽃이나 나무를 잘 자라게 하잖니?……좋은 친구란 그런 거란다."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 삼총사는 배시시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느새 맑은 바람 한 줄기가 꽃무덤을 살며시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 순간 자리를 털고 일어선 꽃향기가 마당 가득 차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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