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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기쁨을 주는 인생이 되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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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joy)이란 구닥다리 단어이다.
이 단어는 거의 사라져 가고,이 단어의 사촌격인 '행복'(happiness)이 이 단어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단어는 동의어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삶 속에 기쁨이 결여되어 있음을 아시고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신걸까?

행복과 기쁨을 구별하는 까다로운 테스트 한 가지가 있다. 행복감은 주변 상황에 따라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덧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기쁨은 현재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고도 깊은 체험이다. 기쁨은 현재의 상황보다 더 깊은 근원을 갖고 있다. 행복이 사람을 동요시키고 들뜨게 만든다면,기쁨은 우리를 한 자리에 뿌리내리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켜 준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 지을 것이다. 그리고 '아,나도 한때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 라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사람들은 '참 못 말리는 사람이로군' 하는 표정으로 한번 힐끔 쳐다보고 "아,그거 정말 좋죠"라고 난처한 표정으로 웅얼거릴 것이다. 행복은 흔하지만,기쁨은 보기 힘들다.

큰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쁘다는 것을 너무 드러나게 표현해도 그다지 좋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낸다. 또한 기쁨은 진지한 목적과는 양립할 수 없고 심지어 상충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 양 극단이 조화를 이루는 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로 이 둘을 결합시켰다. 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지나치게 진지하신 분, 곧 반대자들과 격렬하게 논쟁하시고,질풍노도처럼 말씀을 토해내시는 분으로만 상상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수님을 기쁨에 겨워하시는 분으로 그린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분을 기뻐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분은 의무감에 짓눌려 마냥 근엄한 표정만 짓고 있는 분이라기보다 흥미진진한 스타일의 분이었다. 그분은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하셨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삶이라는 은밀한 바다를 향해하며 기쁨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배와 같으셨다.

지금 당신도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순항하고 있다. 당신이라는 배가 지나간 자리에 어떤 소용돌이,어떤 물결이 일지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기에 달렸다.예수님이 인간관계 '코치'라면, 예수님은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라고 조언하셨을 게 분명하다. 당신 인생의 배가 순간의 행복보다는 충만한 기쁨 가운데로 서서히 나아가도록 하라.


          
(예수님께 배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 중에서  - 월리엄 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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