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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렇게 생각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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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 강남교회 송태근 목사님의 칼럼>

"장로 되고 싶다고? 돈 내야지!"
맘몬의 위력 앞에 예수님이 머물 수 없는 교회가 많다

"한국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행세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과정과 경위를 한번 얘기해 보려고 한다.
우선 임직을 위해서 소위 투표라는 것을 한다.
이 투표 자체도 거의가 담임목사의 의중을 교묘히 반영해서
평소에 담임목사의 필요에(?) 잘 순응한 자들이 덕을 보게 되어 있다.

부교역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설교 시간이나 광고 시간에 기술적인 언어의 유희를 통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담임목사가 의도한대로 표가 나오도록 몰아간다.
대체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웬만한 문제가 아니면 담임목사의 말을 잘 듣는다.
그래서 거의 목회자의 의중을 순종하게 되어 있다.

직분을 사모하고 직분을 받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이며 사모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진정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기 위한 순백한 헌신이 아니라
대개는 "누구의 자식이니까" "누구의 남편이니까" "누구의 아내이니까"라는 식의
혈연이나 지연 등으로, 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력의 정도를 고려해서
앞으로 헌신을 할 것이라는 매우 육적인 사고를 가지고 표를 몰아준다.

한국교회의 직분론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직분이 섬기는 역할이요 기능이 아니라 '신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직분을 받으면 사람들이 변한다.

그리고 그 직분을 만세반석으로 우려먹는다. 직분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기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휘두른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재정이 어렵거나 힘이 들다 보면 그러한 유혹에 넘어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물론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이 순결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을 가지고
묵묵히 그리고 힘겹지만 복음적인 소신을 지키는 현장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은 그 잘못된 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피택이 되고 일꾼으로 선출이 되면 이제 새로운 일들과 많은 준비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목회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고마움으로 보통 '사례'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이 사례라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기본이 양복 한 벌은 돼야
서로가 그동안 밀어주고 도와준 일에 대한 격이 맞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6개월 가량은 기본적인 훈련을 받는데
이 기간 가르치는 내용을 이용해서 그동안 교회가 은근히 절실했던
어떤 건수를 내비치게 되어 있다.

▲교회에서 돈이 위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전부 공멸할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가 빨리 뿌리뽑아야 할 일이 있다면 순수한 헌신을 가르치기보다는
성도들의 헌신을 작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스스로 감사해서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질이든 헌금이든
하나님 앞에 드린다면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보통 교회의 형편은 그러하지 못하다.
임직 받는 자들을 통해서 한 건 올리는 식의 헌신과 물질을 강요한다는 데에
많은 갈등의 요인이 있다.

최소한 큰 건수를 하나 힘을 합해서 교회 앞에다 해놓아야 한다.
돈이 있고 헌신할 마음이 있으면 교회에 무엇을 드리고 헌신하는 것이 왜 나쁜가?
그러나 임직을 받을 정도면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마음이 대개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형편들이 고르지 못한 상황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임직을 받으면서 함께 돈을 거두어
무엇을 교회를 위해 한다고 했을 때, 돈이 있어도 형편이 다르고
사정이 다른 법인데 더구나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자존심이 상하거나 공연히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정 안될 경우는 임직식을 위해서 부채를 지는 경우도 있고
그 임직식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물론 절대 '자율적'이라고 강조를 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이 말 그대로 자율이 될 수 있을까? 절대 안 된다.
영광스런 교회의 직분이 이런 식으로 작용되어진다면
이건 성직을 매매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소위 목적형 임직인 것이다.

이러한 일 때문에 이제는 하나의 공식이 되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서서히
다음과 같은 말들이 돌아다닌다. "교회 직분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해!"

이제 한국교회는 맘몬의 위력 앞에 이미 예수님이 머물 수 없는 교회가 많다.
교회에서 돈이 위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전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교회가 화급한 마음으로 회복해야 할 고백이 있다면
초대교회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향한 선언일 것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러한 경향은 부흥회 같은 것을 이용해서도 작용되어진다.
소위 헌금 전문 부흥사들을 모셔다가 담임목사 양복에서부터 자동차 그리고
사택 구입과 건축 등 교회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부흥회를 이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흥회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죽었던 심령이 살아나고 나태했던 신앙을 흔들어서 잠을 깨우고
새로운 신앙의 삶으로 나아가자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흥회가 소위 목적형 부흥회가 되어 가는 비극을 우리는 심심찮게 본다.

한국교회가 오랜 관행으로 묵인해 온 이러한 잘못된 행태들을 이제는 고쳐야 한다.
차라리 재정이 필요하고 성물이 필요하다면 따로 헌금을 하는 것이
떳떳하고 정당한 것이지, 피택자들과 임직식을 이용해서 한 건을 올리는 것은
이젠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고 목적이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형편이 안 되서 상대적으로 상처가 될 소지가 있다면
교회는 마땅히 약한 자들을 기준으로 분별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관행을 없애는데는 목회자들이 먼저 모든 기득권을 놓아야 한다.
목사들의 위임식에서부터 입구의 축의금 테이블을 치워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임직식에도 축의금 테이블을 치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헌신도 절대 자율적으로 기쁘고 즐거움이어야지 작위적으로
모색하거나 의도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이 없어도 교회 속에서 사람 대접받을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작은 헌신이라도 즐겁게 드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이러한 분위기를 완전히 정착시키는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관된 복음적 원칙을 가지고 우리는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목회자들에게 먼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아굴라의 기도>
주님,
한국교회 안에 이처럼 주님을 바로 섬기려는 목사님들을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닮아 가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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