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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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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는데 가해자는 앗시리아이고 피해자는 이스라엘과 애굽입니다.
가해자인 앗시리아는 피해자의 죄없는 어린 아이들까지 돌에 매쳐 죽입니다.
이러한 가해자의 심장인 니느웨를 향해 나홈 선지자는 "너도 너의 행위대로 멸망 당할것"이라 선언합니다.
선지자는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가해자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를 용서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 항의하고 화를 내던 피해자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화내는것이 어찌 합당하냐?
내가 앗시리아를 아끼는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은 가해자를 사랑하고 용서 하시는데 피해자가 동참 하기를 바라십니다.
방관자들은 당연히 도아야 할 사람들을 돕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피해자가 고통을 당할때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그들의 고통을 즐기는 못된이들입니다.
친척,형제,친구, 같은 공동체, 모두 귀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방관자들은 이들이 환난과 아픔을 당할때 은근히 그들의 고통을 즐기거나 방조한 자들입니다.

오류제일의 가족 여러분,
혹시 타인의 아픔,고통,환난을 보면서 방관하거나 기뻐하며 조소했거나 조롱하고픈 마음을 가지려는 마음이 있다면 오바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십시요.

오바댜서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을 당했을 때 오바댜 선지자가 조국 예루살렘의 함락을 슬퍼하면서 바벨론을 도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함락 시키는데 동참한 에돔을 책망한 내용입니다.
이시간 오바댜서를 살펴보면서 우리안에는 약한자를 향해, 고통받는 자의 아픔에 동참하기 보다 그들의 환란을 기뻐하며 조롱하는 에돔같은 성품이 있지 않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에 등장하는 에돔이라는 말의 뜻은 "붉다"입니다.
에돔의 조상은 이삭의 두 아들중 하나인 붉은 피부의 사나이 에서입니다.
남성적인 기질로 사냥꾼이었던 에서, 들을 달리고 산을 뒤어 오르며 사냥을 했던 용맹한 사나이 에서가 바로 에돔족속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36장을 보면 이 에서 곧 에돔의 족보가 나오는데 36:8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형제였던 에서와 야곱이 철천지 원수가 되었던 사건을 여러분은 잘 아실것입니다.
바로 붉은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먹은 창25:27-34의 사건입니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현재의 이권앞에 하나님이 주신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고 동생에게 팔아먹은 에서 곧 에돔 족속과 야곱의 후예인 이스라엘은 이 사건이 출발점이 되어 두고 두고 반목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 에돔 족속이 나라를 세일산에 세우게 되는데 이 세일산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지라고 합니다.

수도인 페트라는 암석이란 뜻으로 해발 6000-7500미터 높이의 산벼랑에 위치해 있기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었던 그들의 수도에 들어가려면 좁은 계곡을 통과해야 했으니까 그야말로 안전은 보장된 천연 요새지에 나라를 세웠던 에돔 족속, 그런데 문제는 갖추어 놓을 것을 다 구비했다는 이 자만감이 에돔 족속의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바로 오바댜 3-4입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우리중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내 정도는 되어야지 라며 겉으로든 속으로든 뽐내는 분은 있지 않으십니까?
나는 하루에 성경을 몇장 읽고, 기도를 몇시간 하는데 누구는 나처럼 하지 않는다고 으시대는 분은 있지 않으십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지지리도 궁핍하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타인을 얕보는 분이 있으십니까?

행여나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면 오바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용맹스러운 군대와 천혜의 요새지에 나라를 세워놓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에돔 족속은 이중 삼중으로 안전 보장 조치를 취하는데 그것이 바로 7절에 약조한 주변국과 군사 동맹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안전 장치를 해놓고 있었던 에돔 족속이 기회만 있으면 형제 나라인 유다를 공격하게 됩니다.
물론 에돔이 유다 민족을 미워하고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가 또 있는데 아마샤가 왕위에 있을 때 유다 자손들이 에돔 족속 2만명을 낭떠러지 절벽위에서 밀쳐 떠러 죽였던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왕하 14:1-7, 대하25:11-12)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염곡에 이르러 세일 자손 일만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 (대하 25: 11-12)

유다가 에돔에게 행한 엽기적이고 잔인한 가혹 행위를 정당화 시킬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에돔의 복수는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바위위에서 밀쳐서 깨뜨린자들의 후손의 가슴에 응어리진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렇기에 할아버지를 죽이고 할머니를 욕보인 유다의 멸망을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 하나님은 에돔의 행위를 미워하며
선지자를 통하여 저주 하십니다.

형제의 고난의 날에 입을 커게 벌리고 하하 하고 웃으며 기뻐하는 에돔 족속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환난을 방관하고 방조하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으십니다.
에돔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에돔같은 마음을 가진자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심을 기억합시다.

그렇다면 오늘의 에돔은 누구일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사람, 이 속담을 요즘은 사촌이 차를 사면 교통경찰이 되겠다 로 바뀌었다더군요.
속으로 미워하는자에게 환난과 고통의 날이 올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자, 마주 대하기 껄끄럽고 싫어하는 자에게 재앙이 왔을 때 마음속으로 조용히 박수치며
"그것봐라 그럴줄 알았다. 참 쌤통이다" 하며 기뻐하는 이들이 현대의 에돔족이 아니겠습니까?

환난을 방조하는자,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이것을 즐기는 현대의 에돔족들은 오바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16절 하반절의 "본래 없던 것 같이 되기전" 에 선지자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나마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기전에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슬퍼하는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라 하십니다.
그 상대가 누구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범죄자와 악인의 재앙을 기뻐하는 것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척도는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측량줄로 사람을 평가 하십니다.

오류제일 가족여러분,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 도울 힘이 있으면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 하려는 그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도울 힘이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을 하나님은 죄악시 하십니다.
성경은 죄의 기준을 적극적인면과 소극적인 면으로 구분합니다.
하지말라는 명령에 순종치않고 적극적으로 행했던 죄의 측면과 하라는 말씀에 순종치 않는 소극적인 반응도 죄라 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먼저 부름 받느냐 늦게 부름 받느냐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언젠가 부름 받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니다.

부름받는 그날에 주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일에 충성 하였으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라는 칭찬을
받게 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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