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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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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음 - Wayne Schlichter -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의
웹스터 사전은 '성직자(clergy)'를 "그리스도인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성직 수임식에 의해 구별된 일단(一團)의 사람들"로 정의한다. 마찬가지로 "평신도(laity)"를 "성직자와 구별된 사람들"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성직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자들이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니골라당(계 2:6,15)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위를 구별하는 악한 예이다. 니골라당은 "정복하다(conquer)"를 뜻하는 그리스어 "니코(nico)"와 "백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라오스(laos)"에서 유래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 니골라당이 되었으며, 그 의미는 "백성을 정복하는 자"이다. 웹스터 사전이 정의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는 둘 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약교회의 양식을 찾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 인도직(Leadership)

성경이 정의하는 지역 모임의 직분으로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 장로들(elders)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 떼를 치는 목자(shepherd)로 부르신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성숙한 자라야 한다(벧전 5:1-4). 집사들(deacons)은 지역 모임의 물질적인 필요를 준비함으로 지역 모임을 섬기는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자이다(행 6:1-8; 딤전 3:8-13).

"목양자들(pastors)"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단 한 번 나온다(엡 4:11). 이  단어는 다른 곳에서 "목자들(shepherd)", 또는 동사의 형태인 "양을 치다(shepherd)"로 번역되었다. 에베소서에서 목양자들은 가르치는 은사(pators and teachers)를 가진 장로들이다(딤전 5:17).

성경은 "일인(一人)" 사역을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에서 지역 모임의 영적 감독자들(overseer)(감독)과 목자들(목양자들)인 복수의 장로들/목양자들을 본다(벧전 5:1-4; 행 20:17, 20:28-30; 엡 4:11). 그밖에 모임의 물질적인 필요를 돌보는 집사들이 있다(행 6:1-6; 빌 1:1). 지역 모임 안의 인도직을 다루는 모든 성경 구절은 항상 복수형임을 주지해야 한다(행 11:30. 14:23, 15:11, 21:18; 딤전 5:17; 딛 1:5; 히 11:2; 약 5:14).

성직자제도의 뿌리

성직자체계의 뿌리는 사사기 17:9-18:31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은사를 상품화하려는 "고용인(돈 받고 일하는 사람 : hireling)"의 개념을 본다(벧후 2:3). 그는 또한 "아버지(father)"라는 이름을 취함으로,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과 구별하였다. 오늘날의 실행도 거의 동일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인 의무에 대한 책임의 대가를 사역자(ministers)/성직자(clergymen)에게 지불하며, 주님께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면한다. 성직자체계는 영적 삶을 세속적 삶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성향에 기초한 세상의 체계이다. 성직자는, 그가 영적인 사람이든 아니든(심지어 오늘날 여자이든 아니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와 제사장이 된다. 이제 영적인 책임은 성직자의 것이 된 것 같다.

교회 계급제도 : 성직자 체계의 문제점

오늘날 믿는 이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직자"와 "평신도"란 용어는 기독교계 안에 계급제도라는 종교적 구조를 낳았다.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진리는 인간 조직의 계급제도 안으로 실종되었다. 그 결과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비활동적으로(inactive) 되었고, 다른 이들은 으뜸이 되려고 했다. 이는 성직자/평신도의 분리가 건전하지 않으며, 성경적 기초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요한삼서 8-11에서 디오트레페스는 자신을 권위로 대체함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남용했다. 그는 요한과 다른 형제들을 모임으로 받아드리는 것을 거절했다(9절). 디오트레페스는 악한 말로 그들을 헐뜯고,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들까지 금하여 교회 밖으로 내어쫓았다(10절). 11 절에서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따르지 말고 선한 것을 따르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하며, 디오트레페스에 관한 논의를 끝맺었다. 우리가 필히 내려야 할 결론은 결코 디오트레페스도, 그의 본(本)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이 효과적인 사역을 위하여 믿는 이들 가운데 주어진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충족성을 가르치기 때문에, 성직자는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다(엡 4:11; 고전 12-14 장; 롬 12:20; 벧전 4:10-11). 은사를 받은 믿는 이들이 사역의 일을 거절하고, 구원받은 자이든 구원받지 못한 자이든, 인위적으로 임명된 사역자 들을 받아들일 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합당한 지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는 "신약 경륜 안에서 성령님을 거스리는 죄"이다.

교회가 이러한 성직자체계에 연류되었는지의 여부는 은사를 받은 모임의 형제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초 위에서 공적 사역을 할 수 있으며 함께 나눌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어떤 모임이 그 모임에서 임명받지 않은 한 은사 있는 형제가 방문하여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드리려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곳에는 성직자체계가 있으며, 이는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결  론

히브리서 7,8,9 장은 옛 언약이 그 레위 제사장직분과 함께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다고 계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죄를 위한 그분의 희생물이 이 새 언약을 제정하였다(히 10:9-10). 또한, 모든 믿는이는 이 새 언약 아래서 거룩한 왕가의 성직자(제사장)이다(벧전 2:5,9). 하나님의 말씀에서 볼 때 이러한 진리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경륜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적인 교리와 사람의 전통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AD 300년경에는 조직화된 보편적 교회가 생겨났다. AD 325년경 이 교회는 콘스탄틴의 찬의와 지지를 받으며 세속화되었다. AD 500-600년경에 로마 캐톨릭 교회가 조직되었다. 이제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연합하였으며 부패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머리와 이 세상의 사령부를 가졌다. 이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겠다고 했던 교회가 아니었다(마 16:18). 또한 교회의 신비에 대한 계시를 받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양식(pattern)을 따라 세워지지 않았다(엡 3:3-10).

16 세기와 17 세기에, 몇몇 그리스도인은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알았다. 그들은 저항했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세웠다. 그 결과 복음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성경에 기록되고 초세기에 실행되었던 신약교회의 단순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들의 계급제도로 교파를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실행이 되었다. 이들은 계속하여 성직자-평신도 체계를 고수했다.

때때로 작은 그리스도인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했고, 성직자/평신도의 구분이 없는 신약 양식을 따랐다. 오직 사람의 전통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힘써 따름으로 믿는 이들은 다시 한 번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참된 자유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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