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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예수를 보여주세요...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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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잊지 못하는 사람 중 ‘최윤식’ 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함께 공군 사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군 사관 후보생의 4개월 훈련을 받는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전술학이라는 과목입니다.  기초체력과 단결력을 키우기 위해서 완전군장 구보를 시키는데, 연병장을 50바퀴 돌아야 합니다.  거의 2시간 30분을 뛰어야 합니다.  키가 컸던 나는 늘 맨 앞줄에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훈련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하루는 정말 너무 뛰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관할 때도 거의 다 되었고, 교관들의 감시도 뜸하고, 집 생각도 나고.... 도무지 뛰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한 20바퀴쯤 돌다가 교관들이 잘 보이지 않는 반대편 코너를 돌 때 “악!”하고는 숲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들도 “왜 그래…”하면서 같이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4-5명이서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정말 맛있게, 기분 좋게 쉬었습니다.  “에이… 교관들이 보든 말든… 들키면 기합 받고, 안들키면 좋은거고….” 한참을 쉬다가 한 40바퀴쯤 돌 때 다시 살짝 합류했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숲으로 뛰어들었던 우리 외에 낙오했던 다른 사람들은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특별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쨌던 기분 하나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날은 수요일이었는데 저녁에 종교활동을 한다고 교회로 가고 있었스비다.  그런데 누구 뒤에서 “이응도 후보생(앗, 실명이...뽀록 나다니..)!”하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최윤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사실 같은 구대에 있기는 했지만 나는 키가 제일 커서 늘 맨 앞에, 그 친구는 키가 작아서 늘 맨 뒤에 서는 관계로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대뜸 “어제 낙오했죠?”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좀 기분이 나빠서, “예.. 그런데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다음부터는 낙오하지 마세요.”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뜨끔하던 차에 ‘이거 왜 이러시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왜 그러시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정말 대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뛰는 건 정말 못했답니다.  구보훈련 시간이 되면 이렇게 뛰다가 죽나보다 할 정도로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낙오하지 않고 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최윤식은 아주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줄 맨 앞에서 겅중겅중 뛰고 있는 저 이응도라는 친구는 군에 오기 전 전도사 생활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  저 전도사를 보면서 힘을 얻자…  이제 내 앞에 뛰어가는 저 전도사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 구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주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매번 십자가를 지고 뻘뻘거리며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후로 그는 한번도 낙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죽어라고 뛰던 어느날…. 그 예수님이 팍~ 쓰러지는 것이 아닙니까?  어디 그것 뿐입니까?  자신은 생명을 걸고 뒤를 따랐는데 그 예수는 교관들의 눈을 피해서 친구 몇 명과 함께 누워 하늘을 보고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고 했습니다.  운동장에 퍽 주저 앉았습니다.  그날 따라 우리 구대에서는 한 20명이 낙오를 했습니다.  최윤식은 다른 낙오자들과 함께 교관들에게 걸려서 실컷 맞고 구르고 터져서 내무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고민한 것입니다.  “왜 예수가 쓰러졌을까?”

        물론 나는 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직접 잘못한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마음에 좀 걸리는 것은 그가 나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보고 싶어 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달랐습니다.  그가 나를 통해서 보고자 했던 것은 예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보여준 것은 나의 비겁함과 연약함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 감히 낙오하지 못했습니다.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했습니다.  내 뒤통수에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헉헉거리며 뛰고 있을 최윤식과 혹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최윤식의 시선을 따갑게 의식하면서 정말 열심으로 뛰고 또 뛰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필라에서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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