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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16 -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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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이(李) 씨가 홀연히 나타나 깜순이를 데려간 뒤, 분노한 아내가 목사님과의 통화를 통해 평정을 되찾은 때만 해도 '곧장 화해를 해야지' 생각했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심 '한 번 찾아봐야지' 하면서 미루다보니 벌써 4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김 목사님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이 일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기도회에 다녀오자마자, 전에 이 씨가 오면 주기로 아내와 다짐해 두었던 그 개를 잡았습니다.
   눈 덮힌 산중에서 개를 잡는 일보다 정작 힘든 것은 수돗물도 지하수도 없는 우리 집의 유일한 식수원인 계곡의 얼음장을 깨뜨려 개울물을 길어 잡은 개를 깨끗이 손질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함께 거들었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손발은 다른 사람의 손발처럼 점점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정성스레 상자에 담았습니다.    

   아침을 먹은 나는 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납작 엎드리는 눈길이 오늘따라 나에게 겸손한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듯 했습니다. 외딴 오두막에서부터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탯줄처럼 이어진 길을 걸어나오는 동안 나는 오직 이 씨와의 만남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은 더 골똘해졌습니다.

   버스정류장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있는 버스는 첫차 도착 예정시간을 지나 10분…20분…30분…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큰 길까지 5Km 이상을 걸어나가서야 송정리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한 번 갈아 탄 버스는 광주시내를 한바탕 해집고 다닌 끝에 나를 광주의 신개발지인 일곡지구에 내려주었습니다. 언젠가 김 목사님과 함께 와본 적이 있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했습니다.

   이 씨 집 앞에 선 순간 지난 4개월의 갈등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뒤숭숭해졌습니다. 나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여 마신 뒤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열고 내다보는 이 씨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니, 공(孔) 씨 아니요?…"

   육십을 바라보는 그는 그동안 더 늙어 보였습니다. 어서 들어오라는 말에 이끌려 거실로 들어서면서 나는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작에 찾아 뵐려고 했는데…."

   "아이고 거 무슨 말씀…오히려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염치가 없어서…그만한 일로 삐져서…뵐 낯도 없고…하여튼 잘 왔소…자 그리로 좀 앉으시오."

   그를 알고 지낸 지 어언 6년.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이 선생님, 사실 그 때는 오랫동안 비가 온 상황이고…또 다음날이 주일인데 교회 음식준비도 해야 했고 해서…도와 드리지 못했습니다…미안합니다…용서하십시오……."

   "뭔 말이다요…나는 입이 백 개라고 해도 헐 말이 없소. 내가 더 미안허요." 그는 그런 말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이 선생님…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안 허던가요? 인자 앞으로는 더 좋은 관계로 지내십시다…이미 지나간 일은 생각허지 말고……우리 관계가 그저 주고 받는 관계라면 금이 갈 수 있지만……그동안 맺어온 끈끈한 관계에서 의미를 찾으면 좋겄습니다…인자부터는 더 진한 정(情)으로 사십시다."

   그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멈칫하는가 싶더니 내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이 선생님…새해에는 이 선생님도 교회에 나가셔야지요?"

   순간 그는 곧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새해부터선 나갈라고 생각허고 있소!"  

   어쩌면 인삿말로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밝게 웃어보이는 그가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그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미리 옥토로 만들어 놓으셨을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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