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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주님으로만 만족하는 법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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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으로만 만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묵상도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으로만 만족하는 법이 무엇인지 나누겠습니다.

주님으로만 만족하는 법은 무엇보다도 어떤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주님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경에 의한 주님의 뜻대로 살(순종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틀림없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산다는 것 가운데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은 바울의 가르침처럼 범사에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결국 육신(The sinful nature-죄악된 본성)을 추구하고 만족시키려는 것에는 만족이 결코 없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만족을 어떻게 얻는다고 가르칠까요?

그것은 육체의 만족을 추구하려는 일체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이웃의 만족을 채워주려고 힘쓸 때에만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바로 십계명(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지요.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이용하고 고통을 주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정반대로 타인의 불만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들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두가지 잊어서는 안 될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모든 환경과 삶은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부족함 없이 공급해 주셨다는 하나님 주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근본적 문제는 주어진 환경에서 부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부족을 채워주지 않으므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가 교회 공동체는 물론이요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 될 때 엄청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혼돈적 현상은 바로 이런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에서 나타난 현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든다면 노사의 대립의 근본적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사가 서로의 애로사항에 민감하여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 한다면 노사의 갈등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도 서로가 서로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기적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국가의 위기와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킬 어떤 것을 계속 강요함으로 계속 고통을 줄 것이고 그 결과 갈등과 만족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을 채움으로 만족을 추구하려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자기 만족이라는 이기심을 포기하고 타인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하나님의 창조 원칙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자기 부인"이라고 하셨지요.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 지체들은 모두 이 가르침을 깊이 깨달아 진정한 만족가운데서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잊지 마세요. 자기 만족적 이기심을 추구하는 삶은 만족이 없는 더큰 목마름이 있을 뿐이고, 모든 관계에서 타인에게 희생과 고통을 강요함으로 모든 관계를 파괴할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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