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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형님아, 고마 밤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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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끝내고 안방에 모인 아이들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숙자 아버지 이야기, 동수의 교도소 체험담, 동준이의 아버지 이야기, 영호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은 울고 웃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中에서

          
얼마 전, 나도 이와 같은 밤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날도 무척이나 더웠다. 나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얼른 더위를 피해 집으로 도망 와야 했다. 집에 오자마자 걸친 옷들을 훌렁훌렁 벗어버리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나 여느 때완 달리 작업을 제껴두고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해야 할 작업들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지만 작업을 하기 위해선 내 불편한 손을 대신하여 타자를 쳐줄 ‘그 녀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 녀석’은 나중에 밤늦게나 되어서야 온다고 하니 그냥 ‘그 녀석’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게임이나 즐기자 하는 심산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장난칠 궁리만 하는 ‘그 녀석’은 자주 내대신 타자도 쳐주고 함께 게임도 하고 내 이야기도 곧잘 들어주는,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친한 친구 같은 그런 녀석이다. 이윽고 녀석은 배시시 웃으며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금만 더하고 작업하자던 우리는 어느새 모든 일을 뒤로하고 게임에 전념, 그러다 보니 결국 새벽 1시를 넘기고 말았다.  
“이제 그만하고...기도하고 집에 가라. 내일 학원 가야 될텐데...”
사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일 아침에 밀알 월요 모임이 있어 일찍 자야 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헤어지기 전에 각자의 기도제목을 나누기로 했다. 너무 오랜만에 이야기를 해서일까,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3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안중에 도 없는 듯, ‘그 녀석’은 너무도 담담하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계속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 온 부모님의 불화, 아니 싸움이 ‘그 녀석’의 어린 마음에 남긴 끔찍한 상처들...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 ‘그 녀석’은 이야기하면서 계속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고통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는 녀석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큰 상처를 가지고 어떻게 웃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웃기만 하는 녀석의 웃지 않는 낯선 모습에 나는 녀석을 위하여 앞으로 더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치 누군가가 깜빡 잊고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듯, 녀석의 입에서는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왔고 급기야,
“형님아, 고마 밤새자!”
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나 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내일 아침에 있을 밀알 월요 모임이 또 다시 마음에 걸렸고, 시계바늘이 새벽 4시를 가리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녀석을 내쫒다시피 하여 보내고야 말았다. 덕분에 녀석은 미처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도로 담아둔 채,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속을 걸어가야 했다.
녀석의 냄새가 체 가시지 않은 어두운 방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우니 녀석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녀석의 아픔으로 인해 그 날밤의 어두움은 더 짙게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밤을 새자는 동생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 녀석의 어깨는 얼마만큼 처져있을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주님은 나와 매일 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싶어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내 지친 삶의 한겹 한겹을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린 몸으로 듣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형님아, 고마 밤새자.” 라는 동생의 그 짧은 외마디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하시고, 듣기를 원하시는 나를 향하신 그분의 소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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