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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How to handle trouble - 성경적 상담자료

첨부 1


          
    이 글은 성경적 상담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J.E. Adams의 'How To Handle Trouble' 1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역시 저희 교회 성경 공부에 필요해서 지금 막 번역했구요, 하하하 그래서 아직은 따끈따근합니다.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곳에 올립니다.
아마 프린트를 하시면 5-6장 정도되는 분량인데, 혹시 성도의 고난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저자는 바울의 고난을 복음이 증거되는 가장 좋은 환경이요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고난에 고통 당하는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환경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바울과 같은 놀라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지요.
    J.E. Adams는 아주 강력한 성경 중심의 상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피상담자의 삶이 상황보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더 주목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에게서 상담의 성경적 원칙, 혹은 성경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때로는 그의 접근이 너무 딱딱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분들이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이겨나가는가 하는 것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상담 공부 자료실에 옮겨 놓겠습니다.

    늘 평안하소서

필라델피아에서 가일 아빠  


        


               How to Handle Trouble
                                               J.E. Adams

1. 로마에서의 바울의 고난

        고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매우 많습니다.  이 작은 책 한 권에서 고난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본문에 초점을 맞추고 그 본문과 다른 본문을 연관시켜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주제에 접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점을 맞출 본문은 빌립보서 1:12-18입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여러분은 바울이 이 편지를 빌립보 교회에 쓸 당시 바울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그는 로마의 미친 황제 네로를 만날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살아 남아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1:19-25)  그러나 그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고난의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1:20-24)  그가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b)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1:20a)  그것이 바로 그가 자신의 편지를 읽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1:19)에 대하여 기도할 것을 부탁한 이유이며 그 결과가 바로 네로를 만나고 그가 당할 모든 시험과 시련으로부터 “구원”(1:19)되는 것입니다.  감옥 그 자체는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네로 앞에서는 그것조차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영적 경험이 바울의 일상적인 삶을 만들어 냅니다.  자신을 가장 어려운 시련 앞에 두고서도 성경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빌립보서 1:12-26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고난에 대한 성경적인 반응인 것입니다.     .  

        하지만 고난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원인은 현재 일어나는 일이고 둘째는 미래에 있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미 감옥에 갇혔고 고난과 싸우고 있습니다.  12-18절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은 이미 이 고난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로 앞에서 받을 시험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과 기회를 함께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런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고난에 대해 바른 개념을 가지고 넉넉히 이겨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단원에서 나는 바울이 당한 고난을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원에서는 성도의 고난에 대한 몇가지 원칙에 대해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바울은 헤롯 왕앞에서 심문을 받았고 로마로 다시 보내졌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심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바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이 오히려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갇혀있다고 했습니다.(1:13)  물론 바울이 자기 집에 연금 상태로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의 ‘매임’에 대해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의 상황이 누가가 사도행전 28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유를 빼앗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매여 있었다는 것은 빌립보서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6:20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는 밤낮으로 병사들에의 해 감시를 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가 기록되던 때의 상황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많은 억울한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흩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반응을 달랐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의 대답 가운데서 우리는 그의 반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2)

      여기서 ‘도리어’라는 단어는 참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는 말을 통해서 새로운 주제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칭찬과 감사와 기도를 처음 11절을 통해서 전하고 12절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어덯게 ‘도리어’라는 말로 전혀 새로운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도리어’라니요?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가질 수 있는 선입견에 대해 강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당한 객관적인 고난을 보면서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틀렸습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은 ‘도리어’ 복음의 진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무엇이라 말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들은 바울의 투옥이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귀에는 그들의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봐.  가장 위대했던 선교사도 잡혀 들어갔어.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뭔가 잘못 판단하신 것은 아닐까?”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변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성도들과는 정반대되는 고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12-27절에서 정확하고 강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매임’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는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복음의 큰 기회에 대해 언급합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됩니까?


        바울은 그가 로마에거 갇힌 것이 이미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진보’라는 것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길을 질러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시덤풀을 헤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의 ‘갇힘’이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거침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13-18절에서 두 가지 분명한 진보를 보여줌으로 이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시위대와 관리들에게 복음이 증거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13)

        바울은 말하기를 복음이 16,000명이나 되었던 시위대 모두에게 복음이 증거되었다고 말했고 기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궁궐 안에서 황제를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온 시위대’ 즉 그들 모두와 ‘기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매임과 이유가 전해졌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때문에 스스로 매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의 뚜렷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기록된 사실에 근거한 상상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결박되고 병정들의 감시를 당하고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분명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그렇다.  이것은 내게 주신 기회이다.  하나님은 내게 갇힌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구나.”  죄수들 뿐 아니라 많은 간수들이 자신들의 근무 시간을 따라 들어오고 나갈 때에 바울은 그들에게 분명히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동역자가 될 때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일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동료에게 돌아갔을 때, 그들은 왕궁을 지키는 관리들과 병사들, 심지어 왕을 가까이 지키는 내관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말 할만큼 널리 증거된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된 결과 황제의 집에서 성도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빌 4:22)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바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또한 언젠가 바울이 당한 일과 같은 일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갇힘이 복음의 진보가 된 두번째 증거는 14-18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4-18)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전도했지만 그의 사역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곳곳에서 바울이 직접 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오면 할 수 있을텐데 나 같은 사람이 해서 뭘해”라고 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시 그들이 살았던 상황 속에 들어가 봅시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우리들에게 올 수 없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형제들이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중해 연안의 복음 전파는 바울의 투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얼마나 강력하게 옥중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지 알게 된 그들은 더욱 열심히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바울의 ‘매임’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1:12)

        15-18절에서는 바울의 매임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있는 반면 착하고 바른 뜻으로 오직 복음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이든지 바울은 말하기를 “기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전해지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옳지 못한 동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종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는 로마서 14:4절에서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셋째 바울은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로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변호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빌 1:20)  그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서 자신이 로마의 법정에 와서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담대하게 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22절에서 말하고 있는 ‘열매’맺는 일을 하기 위해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4, 25절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말씀들을 근거로 볼 때 우리가 만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고난의 중심에 든든히 서서 새로운 선교 사역을 당당하게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일을 어디서든 계속하기를 원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의 정상에 올라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난의 삶 자체를 즐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밝으로 나가서 스스로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그가 고난 가운데 믿음의 꽃을 피운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핍박과 고난과 고통과 그 어떤 어려움에 대해서도 피하거나 연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 고난이 가져다 주는 복음 전파의 기회를 이용하기를 원했습니다.  다음 단원에서 나는 어떻게 여러분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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